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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산업이야기] 영광에 취한 국가의 추락…영화 ‘국가부도의 날’

정경유착+정부의 무능+‘아시아 버블’ 시너지로 국가 파산 위기, 그리고 그 후

[산업일보]
[문화 속 산업이야기]는 영화, 책, 방송 등 다양한 문화 속에 녹아있는 산업의 역사와 이야기를 풀어보는 시간입니다. 딱딱해 보이는 산업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볼까요? *실화가 바탕인 만큼 역사가 스포!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조용히 뒤로 버튼을 눌러주세요~

[문화 속 산업이야기] 영광에 취한 국가의 추락…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네이버 영화

IMF, 일명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은 1945년에 설립돼 현재 189개 국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기본 임무는 국제 통화 시스템(환율, 및 국제 지불 시스템 등)의 감독 및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국가 부도’가 나는 경우, 해당 국가에 개입할 수 있다.

1997년, 11월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가 한국의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긴급 회동을 가졌다. 한국은 사실상 국가 부도를 인정,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1997년 IMF가 한국 경제에 개입하게 된 외환위기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낸 영화 ‘국가부도의 날’(최국희 감독, 2018)은 극적 장치를 위해 흑백 논리적으로 정치적 인물 구도를 담아내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들도 일부 그려지지만,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상황을 대조해 보여줌으로써 외환위기가 가져온 삶의 변화와 무게감을 담아냈다.

199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호황’을 누렸다. 지금처럼 잘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OECD 가입국이 됐고,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그렇게 한국은 화려하게 세계 경제의 관심을 받으며 선진국의 대열에 들었다고 자축했다.

[문화 속 산업이야기] 영광에 취한 국가의 추락…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네이버 영화

그러나 영광의 그림자에 무거운 빚과 어두운 비리들은 가려지고 말았다. 세계적으로 아시아 버블이 한풀 꺾이면서 태국의 바트화 폭락이 아시아 경제의 몰락을 이끌었다. 뒤이어 필리핀, 홍콩, 대만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외환위기가 도래했고, 이는 해외 자금이 아시아에서 빠져나오는 흐름을 형성했다.

한국은 경제 펀더멘털이 좋으니 외환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이미 해외자금으로 막대한 빚을 지고 있던 대기업들의 몰락이 시작되면서 산업의 뿌리인 중소 제조업체들까지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국내에서 그 불운을 시작하게 만든 사태는 한보그룹의 부도였다. 막대한 자본을 빌린 과도한 설비투자와 문어발식 확장을 진행한 대기업들의 정경유착 민낯이 드러나면서 감춰졌던 위기는 빠르게 수면으로 떠올랐다. 한 번 떠오른 위기는 정부가 부인해도 감출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이하자 차가운 쇠가 가져다준 뜨거운 영광은 빨간 딱지와 함께 순식간에 녹슬어버렸다. 당시 정치와 경제의 유착은 당연한 관례였고, 금융사들은 외국인들이 잠시 빌려준, 당장 손에 쥐고 있는 돈을 기업들에 ‘마구’ 장기 대출을 승인했다. 어음이라는 종이 한 장에 신뢰를 쉽게 사고팔았고, 눈치가 빠른 이들은 도망치거나 사기를 쳤다. 결국 피해는 중소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이웃을 돌보던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문화 속 산업이야기] 영광에 취한 국가의 추락…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네이버 영화

극 중에서 윤정학(유아인)은 누구보다 빠르게 위기를 예측하고 기회로 만들어 새로운 재벌이 됐다. 그러나 중소 제조업체 사장이자 일반 서민으로 국가와 언론의 말을 의심 없이 믿었던 갑수(허준호)는 자신을 마음으로 도와준 정사장(정규수)마저도 배신하고 자기의 안위를 챙기면서 비정하게 살아남았다. 갑수의 빚까지 떠안게 된 정사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대기업은 정부의 정보와 지원을 받고, 국민들의 희생을 더해 회생에 성공했다.

당시의 한국 경제 구조는 연결된 한 고리만 끊어져도 연쇄부도를 불러오는 최악의 구조였다. 영광에 취했던 나날에서 갑작스러운 추락은 더욱 큰 고통을 안겨줬다. 그리고 그 고통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이들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줬다.

IMF의 개입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파산은 막았지만, 위기를 단번에 해결시킬 수는 없었다. 부실 금융기관 폐쇄, 고금리 유지, 정리해고, 금융시장 개방 등을 요구한 IMF의 조건에 맞춰 국민들은 계속해서 혹한기를 지내는 군인처럼 힘겹게 버텨냈다. 다행히도 한국 국민 특유의 성실함은 약 4년 만인 2001년 8월, IMF의 구제금융을 모두 상환해냈다.

IMF 이후 느낀 바가 많은 한국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산업의 위기는 이후로도 지속되고 있다. IMF 이전 8%를 넘던 잠재성장률은 절반 이하로 하락했고, 중국은 가성비를 앞세워 빠르게 추격하거나, 어떤 분야는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

[문화 속 산업이야기] 영광에 취한 국가의 추락…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네이버 영화

쉴 틈 없이 한국 산업에 고충과 위기가 더해지는 상황에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상생(相生)’이다.

비록 그 도움이 미약했을지라도 국민들이 IMF 극복을 위해 함께한 ‘금 모으기 운동’은 한국의 자부심으로 남았다. 대기업만 산다고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은 구시대적인 사고가 됐다. IMF 금융위기의 뼈아픈 경험은 튼튼한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인지시켰다.

어느 한 쪽만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不正) 없이 서로서로, 모두 함께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 위기를 극복할 실마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코로나19)이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이 되고,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전 세계적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또 다른 ‘국가부도의 날’이 재현되지 않기 위해, 더욱 ‘상생(相生)’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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