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인력공단(이사장 송영중,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이 주관하고 고용노동부, 강원도, 강원도 교육청이 주최하는 2013년 제48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는 이색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 10월 7일까지 열린 대회는 춘천, 원주, 강릉, 태백 등 강원도 일원 5개 경기장에서 48개 직종, 1,884명이 참가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판금 직종의 명가(名家)
이번 대회 판금 직종에 출전하는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원현준(19세) 군은 지난 추석 명절도 잊고 이번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준비했다.
약 30년 전 같은 학교를 졸업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형과 원현준 군은 자연스럽게 기술인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원군의 형은 지난 7월 독일에서 열렸던 국제기능올림픽 철골구조물 직종에서 최고점을 기록해 MVP를 수상한 원현우 씨다. 원군은 형의 대단한 성공으로 이번 대회에 대한 부담감이 많았지만 기술은 노력한 땀을 기억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훈련해 왔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요리사의 꿈을 꾸었던 적도 있었지만 장래를 고민할 때 요리보다도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은 기술인의 길을 택했다. 아울러 형이 전국대회를 우승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뒤에도 끊임없이 기술 연마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원군에게 열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원군의 손바닥은 여느 고등학교 학생들처럼 부드럽지 않다. 딱딱하게 굳은살과 베인 상처가 그동안의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원군은 “아버지와 형이 하는 걸 그냥 볼 때와는 천지 차이”라며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어요, 무거운 철판을 망치로 구부리고 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원군은 “어려운 과정을 다 이겨내고 국제기능올림픽에서 MVP를 차지한 형이 자랑스럽다”며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형의 기록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석공예 기술의 대(代)를 잇는 부자(父子)
석공예 직종에 참가한 백성기(67세), 백재현(37세) 부자는 명품기술을 알리기 위해서 이번 대회 금메달에 도전했다.
아버지 백 씨는 “최근에는 석공예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강가가 환경오염이 많이 됐고 석재를 이용한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철원에서 나는 현무암을 이용해서 만드는 맷돌은 그 성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간신히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 명맥의 중심에 백성기 씨가 있고 백 씨는 천연 현무암의 친환경성에 실용성을 더해 맷돌, 절구 등을 개량한 생활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는 “예전처럼 무겁고 돌리기 힘든 맷돌은 찾지 않는 게 당연하다”며 “윗돌과 아랫돌의 무게에 따른 분쇄 능력을 검증해 적절한 무게로 개선한 맷돌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반영해 커피 그라인딩(Grinding)이 가능한 맷돌도 개발했다.
맷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결국 1996년 자동 맷돌 특허를 시작으로 상당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백 씨는 “석공일이 많이 힘들고 위험하다”며 “그래서 뒤를 이어준 아들이 더욱 고맙다”고 말했다.
아들 백재현 씨는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돕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석공예에 입문하게 됐다.
아들 백 씨는 “아버지의 열정은 저도 따라가지 못한다”며 “지난 지방대회에서 아버지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지만 아직 아버지의 기술을 넘어 서기는 멀었다”고 겸손해 했다.
백씨 부자는 “금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메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석공예 기술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는 출전 각오를 말했다.
기술로 성공스토리를 쓰다.. 새터민 첫 출전
이번 대회 금형 직종에 참가하는 오경일(20세) 군은 2011년 북한에서 남한으로 자유를 찾아온 새터민이다. 새터민이란 북한이탈주민으로 기존의 탈북자를 대신해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란 순 우리말로 2005년부터 사용돼 왔다. 북한을 먼저 나와 국내에 머물고 있었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지만 제3국을 통한 국내 입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울러 국내에만 입국하면 모든 게 다 잘 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오 군은 “기술에 관심도 있었지만 기술을 배우면 굶지 않는다는 것은 북이나 남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다”며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금형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오 군은 마이스터고인 금오공고의 입학전형이 모두 끝난 이후에 문을 두드렸고 처음에는 입학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새터민의 정착을 도와주는 하나센터에 도움을 요청했고 오 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금오공고에서는 특별 입학을 허가했다.
그는 “북에 있을 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고 말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지난 4월 경북지방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이번에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한 것이다.
오 군을 지도한 이창열 교사는 “지방대회 입상 이후 자만심에 빠질 법도한데 경일이는 늘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일이는 이제 시작이다”며 오군의 가능성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친구들과 학교 선후배에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군은 “기술을 통해서 취업도 하고 어머니께 빨리 용돈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이제는 꿈을 찾았다. 이번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꼭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같은 꿈을 꾸는 기술 남매
안산공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종화(19세)군, 박수희(18세) 양 남매는 이번 대회에 각각 웹디자인 직종과 애니메이션 직종에 경기도 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박 군은 “중학교때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솔직히 대학을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며 “안산공고를 졸업한 누나의 권유로 특성화고를 선택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박 군은 “남보다 빨리 기술을 배우기를 원했고 선택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면서 “올해 독일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웹디자인 직종의 금메달리스트 조용구 선수처럼 꼭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웹디자인은 단순히 컴퓨터 화면에 디자인만 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하는 박 군은 “마크주커버그의 페이스북이나 우리나라의 카카오톡과 같은 앱을 개발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당당히 밝혔다.
애니메이션 직종에 출전하는 박수희 양은 같은 학교에 일란성쌍둥이 동생과 같이 재학 중이다. 같이 시작한 애니메이션 기능반을 동생은 중도 포기하고 지금은 박 양만 훈련 중이다.
컴퓨터 분야만 따지자면 오빠보다 이르게 두각을 나타낸 박 양은 올해 2학년으로 지방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언니와 오빠처럼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특성화고에 입학했지만 흥미 있는 분야가 없었다. 이때 즐겨보던 애니메이션을 직접 제작 할 수 있는 기능반을 운명처럼 접하게 됐다.
이후부터 무기력했던 학교생활에서 기능경기대회 도전을 통해서 성취감을 알게 됐고 무엇인가를 이뤄야겠다는 욕심도 생겼다고 전했다.
박 양은 “자연스런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며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할 때도 많다”고 덧붙였다.
박종화 군과 박수희 양은 같은 학교에서 비슷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며, 서로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격려를 잊지 않았다.
이 밖에도 목공 직종에 홍일점으로 참가한 한림공업고등학교 강지연(17세) 양, 건축설계/CAD 직종에 홍일점 부평디자인과학고등학교 정은주(19세) 양, 공업전자기기 직종에 홍일점 인천전자마이스터고등학교 이주연(19세) 양, 메카트로닉스 직종에서 유일한 남녀 혼성팀으로 출전한 인천마이스터고등학교 강한별(18세, 여), 김영철(19세, 남) 등 다양한 이색 참가자가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