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일제가 팔아넘긴 금액은?
미국 문서에는 10달러, 일본 문서는 1만달러로 각각 달라
얼마 전 일제에 의해 강제 매각된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을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해 큰 화제가 됐다.
대한제국 시절 외국 공관 중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 있는 건물로, 102년 만에 되찾게 되어 그 의미는 사뭇 남달랐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고종이 2만 5000달러에 산 건물을, 일제가 5달러에 빼앗아, 10달러에 미국인에게 되팔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하지만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실제 매각 금액은 10달러가 아닌, 1만달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대한제국의 해외공관’을 펴낸 홍인근 국제한국연구원 이사는 “주미공사관의 실제 판매가는 애초 알려진 10달러가 아닌 1만달러”라고 책에서 밝혔다.
한일강제병합 직후 주미 일본공사가 보낸 ‘구 한국공사관 부지, 건물 및 가재 등 매각의 건’ 문서에 “미국인 풀턴 씨에게 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을 1만 달러에 매각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또 조선총독부 문서를 보면 “(총독부가) 주미 일본 공사에게 매도가격이 명시된 증서 1통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주미 일본공사는 ‘가급적 매도가격을 적지 않는 미국 워싱턴 DC의 관례에 따라 형식적인 가격인 10달러를 적은 계약서만 있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홍 이사는 “고종이 처음 건물을 살 때도 실거래가는 2만 5000달러였지만, 역시 매입증서에는 5달러로 적혀 있다”며 “매각 후 주미 일본공사관이 조선총독부에 약 1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실제 매각 금액은 1만 달러가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983년 일제가 5달러에 주미공사관을 빼앗아 10달러에 팔아버린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매각 금액은 10달러가 맞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조선통감부는 1910년 6월 서울 덕수궁에서 당시 태황제이던 고종에게 5달러를 주고, 주미공사관의 양도문서를 받았다.
“고종에게 주미공사관의 양도문서를 받은 것은 주미공사관의 소유권이 대한제국이 아니라 이희, 즉 고종 개인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그렇게 작성한 부동산 양도증서를 워싱턴에 있는 주미 일본공사에게 보냈고, 강제병합 직후 서둘러 미국인 풀턴에게 10달러에 처분을 했습니다.”
김 명예교수는 일제가 공사관 건물을 급매각한 이유는 당시 미주에서 왕성하게 독립운동을 펼치던 대한인국민회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제국 공사관이 존치되면 항일독립운동 근거지가 될 가능성이 커, 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서둘러 헐값에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실제 매각 금액이 1만 달러라는 일본 외교문서에 대해 “5달러에 강탈한 것을 호도하려는 일본의 ‘꼼수’가 아니겠냐”며 일제 기록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내비쳤다.
“일본은 절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일강제병합을 ‘합방’이라 하고,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 등 대륙 침략을 ‘진출’로 미화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항복을 했지만 항복이라는 표현을 안 쓰고 ‘종전’이라 하지 않습니까?”
김 교수는 “부동산 거래에서 가장 확실한 기록은 바로 그 부동산의 거래 문서가 아니겠냐”며, “일본 외교문서에 실거래가 기록이 있다해도 그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기록’이다”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주미공사관을 외교박물관으로 만들어 우리 민족이 외국과 맺은 외교 문서를 전시해야 한다며 건물의 사후 활용 방안에 대한 뜻 깊은 제안을 했다.
한편 이 같은 가격 논란에 대해 주미공사관을 매입한 문화재청 관계자는 “우리 건물이 강탈당했고, 우리가 되찾았다는 게 팩트이자 중요한 의미”라며 그러나 “관련 기록에는 각주를 통해 ‘미국 정부문서에는 10달러로 적혀 있지만, 일본 문서에서는 1만 달러라는 기록도 있다’”라고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사후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현재 건물이 주거용으로 되어 있어 용도 변경이 우선”이라며 이후 “각계의 의견을 참고해 활용방안을 세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