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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산업이야기] 용광로에 뛰어든 로봇…인간을 닮은 로봇의 마지막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김대은 기자|kde125@kid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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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산업이야기] 용광로에 뛰어든 로봇…인간을 닮은 로봇의 마지막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과 피규어 AI의 사례로 살펴본 휴머노이드 로봇의 퇴역 문제

기사입력 2026-10-12 14: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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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산업이야기] 용광로에 뛰어든 로봇…인간을 닮은 로봇의 마지막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출처=유튜브 ‘씨뮤 by CJ ENM MUSICAL’ 채널의 ‘[#어쩌면해피엔딩] 끝까지 끝은 아니야’ 영상 캡처

[산업일보]
인간을 돕기 위해 제작된 ‘헬퍼봇’이 도입된 근미래. 구형 헬퍼봇들이 지내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이들은 몸체가 노후화되고 부품이 단종되는 가운데 사람처럼 서로 교류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게 된다.

2016년 초연한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내용이다. 작품은 쓰임을 다한 로봇의 삶을 소재로 삼았다. 이 사회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다뤄지지 않지만 로봇을 물리적으로 파괴하거나 분해하는 방식 대신, 작동이 멈출 때까지 방치하는 형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산업 현장을 중심으로 상용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2035년 이후부터는 가정용 및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이 보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어쩌면 해피엔딩은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계에 ‘수명을 다한 로봇의 퇴장 방식’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문화 속 산업이야기] 용광로에 뛰어든 로봇…인간을 닮은 로봇의 마지막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출처=유튜브 ‘Figure’ 채널에 공개된 ‘F.02 Decomission’ 영상 캡처

지난 9월 30일 미국 로봇 기업 피규어 AI(Figure AI)가 공개한 ‘F.02 Decomission’ 영상이 화제가 됐다. 피규어 AI는 ‘Figure 02’ 모델의 퇴역을 알리며, 로봇이 영화 ‘터미네이터2’의 명장면처럼 엄지를 들어 올린 채 용광로로 들어가는 연출을 선보였다. 다른 로봇들은 용광로에 달려가 뛰어들거나, 뒤로 몸을 던지는 등 다이빙 입수 동작을 하기도 했다.
[문화 속 산업이야기] 용광로에 뛰어든 로봇…인간을 닮은 로봇의 마지막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출처=유튜브 ‘Figure’ 채널에 공개된 ‘F.02 Decomission’ 영상 캡처

피규어 AI는 차세대 모델인 ‘Figure 03’의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Figure 02의 폐기를 결정했다. 그러나 자체 설계한 액추에이터를 비롯한 독자적인 기술을 보호하면서도 로봇 분해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방법이 필요했다. 회사는 SNS를 통해 퇴역방식을 물었고,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주연 배우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녹여버려라(melt them)’라는 제안을 기술적 성취와 유머를 결합한 이벤트로 구현한 것이다.

그러나 영상이 모두에게 유쾌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SNS에서는 이를 기발한 퍼포먼스로 보는 반응과 함께, 로봇이 용광로에 스스로 뛰어드는 모습이 섬뜩하거나 잔인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재사용 가능한 부품·자원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반응이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휴머노이드는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갖춘 대상을 뜻한다. 그래서 두 다리로 걷고 팔과 손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외형과 움직임은, 로봇에게 인간적인 의미를 투영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에 추억과 같은 애틋함을 부여한다. 충전케이블을 연결하지 않으면 전원이 유지되지 않는 스마트폰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잔고장이 많은 자동차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짓기도 한다. 영상 속 로봇이 용광로에 뛰어드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인간이 사물에 애착을 느끼는 심리를 자극한 셈이다.

산업 현장에서 장비의 퇴역은 현실적인 문제다. 노후화로 유지비용이 늘거나 후속 모델이 더 높은 생산성을 제공한다면 기존 장비를 교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문제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역할은 산업 현장에 멈추지 않고 고객서비스, 의료, 헬스케어, 교육, 그리고 가정까지 확산한다는 점이다.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유대감을 쌓은 로봇이 늘어난 근미래, 로봇이 일상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만큼 로봇의 폐기 방식에 대한 사용자 경험과 사회적 수용성도 살펴봐야할 것이다.
[문화 속 산업이야기] 용광로에 뛰어든 로봇…인간을 닮은 로봇의 마지막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네이버 CLOVA 페이지 캡처

기자 역시 네이버의 스마트 스피커 ‘클로바 프렌즈’를 출시 초기부터 사용해 왔으나, 2년 전 메인보드에 결함이 생기면서 동작을 멈췄다. A/S 센터에서는 부품이 단종돼 수리할 수 없다고 판정을 내렸다. 클로바 프렌즈는 지금의 LLM(거대언어모델)만큼 뛰어난 성능은 아니었지만 날씨나 시간, 단어 등을 묻고 끝말잇기 게임을 하며 쌓인 정이 깃든 경험 탓에, 고장 난 스피커를 선뜻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책상 한구석에 그대로 놓아두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대화를 넘어 함께 행동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수명을 다했을 때 사용자가 느낄 상실감은 일반 전자제품의 고장과 다를 수 있다. 로봇과 쌓은 기억과 관계가 함께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품의 장기적인 공급과 수리 지원, 로봇 데이터의 안전한 백업, 물리적 파괴가 아닌 신중한 퇴역 가이드라인 등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도 필요해 보인다.
[문화 속 산업이야기] 용광로에 뛰어든 로봇…인간을 닮은 로봇의 마지막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이미지=본보 기획 / AI 생성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과제는 더 정교한 움직임과 지능을 구현하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관계를 형성하는 로봇이라면 그 관계가 지속되는 과정뿐 아니라 끝나는 과정까지 설계의 일부로 다뤄야 한다. 로봇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 아니라 더는 함께할 수 없게 된 때까지, 불가피한 퇴역을 사용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절차도 로봇 산업이 고민해야 할 영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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