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인공지능(AI)이 산업의 구조를 재편함에 따라, 일하는 형태와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노동 법제·현장의 전문가인 공인노무사 역시 이에 맞춰 체질 개선과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최기상,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국공인노무사회가 주관한 ‘AI 시대 노무사의 사회적 역할’ 토론회가 19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노무법인 숲 임청아 대표 노무사는 ‘AI 시대 노동법 전문가로서 공인노무사의 역할과 책임’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그는 “기술 발전으로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라며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Gallup)이 정의한 ‘FOBO’를 소개했다. 갤럽의 조사에서 FOBO를 느끼는 미국 근로자는 2017년 13%였지만, 올해 27%로 약 두 배 증가했다고도 덧붙였다.
AI의 공인노무사 대체 전망은 연구마다 달랐다. 한국규제학회의 ‘인공지능의 전문직 대체 가능성과 사회적 압력 기반 규제샌드박스 설계에 관한 연구(유한별, 김승완)’에서는 공인노무사의 대체 가능성이 66.9%로 대체 위험도가 높은 직종으로 분류했다. 반면 한국고용정보원의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에서는 공인노무사 일자리가 향후 10년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 대표는 “공인노무사 직무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뒀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라며 AI로 대체되지 않은 업무가 무엇이며, 각자 담당 업무의 구성을 점검해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공인노무사법을 살펴보니, 공인노무사 자격을 가진 자가 독점하는 업무는 관리 구제의 대행·대리, 서류 작성 및 확인, 노무관리진단에 한정돼 있었으며, 그 외 업무는 자격이 없어도 할 수 있거나 일부 업무는 변호사나 경영지도사도 할 수 있게 돼 있다”라며 “노무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AI로 무장한 노무사가 아닌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노무관리진단을 차별화 영역으로 지목했다. 대상 범위가 포괄적이며, 한쪽의 의뢰를 받더라도 양쪽의 의견을 다 청취할 수 있고, 법률 정보 제공을 넘어 조언과 지도가 담긴 합리적 개선방안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입법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측면에서도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은행권에서는 인사이동 원칙과 기준을 반영한 AI 기반 영업점 이동 배치 시스템을 도입한 사례가 있으며, 플랫폼 기업에서는 고객의 리뷰를 AI가 분석해 배달원의 등급을 정하게 하고 있다. AI 기반 채용은 많은 기업에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임청아 대표는 이러한 AI 인사시스템을 규율할 명확한 기준이 없는 ‘노동법의 공백’ 상태라고 짚었다.
노동조합의 역할도 강조했다. 피지컬 AI(물리 인공지능)가 부상하면서 숙련 기술자의 노하우가 AI 학습 데이터로 쓰이고 있는데, 이를 제공한 노동자가 기술에 배제되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화에 따른 직무 전환 교육·훈련을 통해 새로 변화되는 직무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도 노조가 고민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노무사의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임 대표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노무사의 과제로 ▲노동법 전문성 고도화 ▲AI 리터러시 교육 ▲AI 활용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제시했다.
노무사의 역할, 분쟁 해결에서 예방·검토로 이동
두번째 발제를 진행한 중앙노동위원회 임종국 공익위원은 AI 시대의 노사 관계 변화와 노무사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AI는 기업·국가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향상함과 동시에, 새로운 노사 및 노노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라며 명과 암을 짚었다.
그러면서 실제 사례를 소개했다. 올해 삼성전자에서는 반도체 특수로 인한 성과급을 둘러싸고 DS(반도체)부문과 DX(가전)부문의 노동조합 간 갈등이 벌어졌다.
AI 상담사 도입을 두고 노사 간 입장 차이도 확대되고 있다. 2023년 은행 콜센터 협력업체에서 AI 상담 확대와 콜 수 감소를 이유로 상담사 240여 명에게 해고 예고 통지를 하면서 AI 도입으로 인한 고용 불안 우려를 실체화했다. 또, 일자리 상실이 아니더라도 AI가 해결하지 못한 불만 고객 응대가 몰리면서 상담사의 노동강도와 정신적 스트레스 증가로 이어졌다. 임 위원은 AI 도입에 따른 노사 간 의견 차이 및 대립 증가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올해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회가 체결한 중앙교섭 잠정합의안에는 AI 도입 시 노동 인권과 고용 보호 조항이 선제적으로 담겼다.
임종국 위원은 “AI는 기업 경쟁력이나 생산력과 직결되는 현실적인 문제로 노사 모두 AI 도입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기술 발전의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할 방안과 노동자의 직무 전환 및 고용 안정 보장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법과 제도가 시차를 두고 따라오는 이때, 현장을 이해하고 법과 현실을 연결하는 노무사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라며 노무사의 본질을 ▲법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는 현장 실무 전문가 ▲인사제도 설계 단계부터 리스크를 점검하는 분쟁 예방 전문가 ▲신뢰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노사관계 개선 선도자라고 해설했다.
임 위원은 “그동안 노무사가 노사 분쟁의 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AI 인사 시스템의 알고리즘 검토자나 분쟁 예방 전문가의 역할에 무게가 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