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의 주인공 ‘윌 헌팅’은 천재적인 기억력과 수리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입양과 파양이 반복되고, 위탁 부모에게서 학대까지 받으며 반항아로 자랐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비아냥과 욕설을 입에 달았고, 절도 전과도 있다.
윌은 어느 날 청소부로 일하던 MIT에서 수학과 램보 교수가 복도 칠판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출제한 고난도 수학 문제의 답을 풀어낸다. 램보 교수는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일련의 과정 끝에 심리학과 숀 교수와의 상담을 이어준다.
램보 교수는 윌의 성장을 위해 대형 회사들과의 면접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러나 윌은 면접에 가지 않거나, 친구를 대신 보내는 등 성의 없는 태도로 일관한다.
반면 숀 교수는 윌의 상처를 먼저 치유하고,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램보 교수와 격렬한 언쟁까지 벌이게 된다.
결국, 숀 교수와 상담을 통해 윌은 내면의 상처에서 벗어나게 되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청년 바라는 최소 시설 1위, ‘청결한 화장실'
지난 10일 고용노동부는 ‘쉬었음’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미취업 청년의 고용정책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해당 정책은 미취업 청년에게 심리상담·일 경험을 제공해 회복을 돕고, AI 활용 능력과 같이 취업에 필요한 훈련을 제공하며, 채불·산업재해·직장 내 괴롭힘 없는 ‘기본을 지키는 일터’를 보장하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기본을 지키는 일터’는 무엇을 말할까. 고용부가 10일 배포한 정책 보도자료에는 대학내일이 조사한 ‘쉬었음 청년의 주요 인식과 행동 양상’이 포함됐다.
이 자료에서 ‘직장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의 최소 기준은, ▲최소 연봉 2천823만 원 ▲통근시간 63분 이내 ▲추가 근무 주 3.14회였다. 수용 가능한 최소 고용 형태는 ‘정규직 기회가 있다면 계약직도 가능’ 이었고, 최소 사내 시설 1위는 ‘청결한 화장실’이었다. 사내식당·카페, 혹서기와 혹한기 냉·난방이 그 뒤를 따랐다.
또한 이들은 성장·경력에 도움이 되는 업무를 수행하고, 반말·갑질·감정쓰레기통이 아닌 최소한의 존중이 이뤄지며, 최저임금·주휴수당이 보장되고, 불필요한 야근이나 주말 출근이 없었다면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직장 경험이 없는’ 청년들은 기업들의 눈높이가 기존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기업의 신규채용 규모는 축소됐고, 채용 전형은 서류, 인적성, AI 면접, 영어인터뷰, 임원면접으로 복잡하고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흔히 ‘쉬었음’ 청년을 향해 ‘나약하고, 나태하다’라고 비판한다.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고 바라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라도 일단 입사해서 실력을 키우고 경험을 쌓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청결한 화장실을 1위로 꼽을 정도로 ‘상식적인’ 일자리다. 최소한의 존중과, 나라가 정해준 최소한의 임금을 받고 싶다는 게 무리한 요구일까.
굿 윌 헌팅의 명장면은 가정폭력을 당한 윌의 상처를, 숀 교수 역시 동일하게 겪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숀 교수는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알겠다고 애써 웃어 보이는 윌에게 그는 여러 번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전한다. 감정이 복받친 윌은 숀 교수를 밀치며 화내지만, 결국 그의 품에 안겨 오열한다. 그렇게 상처를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기성세대는 산업 성장을 주도했다. 전후 열악하다 못해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조국을 일으켰다. IMF의 한파에서는 가정을 보전하고 경제를 회복시켰다. 이제, 우리 산업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인정할 때가 왔다. 주저앉은 다음 세대를 일으켜주고, 함께 문제를 고쳐 나가야한다. 우리 사회가 영화 속 숀 교수처럼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어 줘야 한다.
김영훈 장관, “청년 일자리 멘토 될 것”
고용부 김영훈 장관은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당장의 고용정책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3학년 2학기’라는 영화에서 ‘청년들의 일자리가 벌을 받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라는 영화 감독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라며 “돈을 벌게 해준다는 이유로 청년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답했다.
또한,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함께 해결책을 고민했는지 돌아보게 됐다”라며 “아직 정해진 노선이 없이 최종 목적지를 향해 본인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예비 노동자들이 막막함 속에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가 든든한 일자리 멘토가 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의 첫 고용부 장관은 눈에 띄는 정책적 성과보다, 우리 일자리 문화의 체질 개선을 선택했다. 정부의 노력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업들의 인식 개선과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야하는 목표다.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는 과연 쉬었음 청년들의 마음을 회복시키고 발걸음을 다시 내딛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