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최근 자율주행 분야는 엔드투엔드(End-to-End·E2E) 기술을 통해 상용화의 돌파구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AI 기반 자율주행 도입을 위한 대응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E2E 자율주행의 핵심 요소인 데이터 확보 전략과 표준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스타트업 브랜치에서 ‘AI 자율주행 | SDV 혁신의 열쇠, End-to-End AI 기반 자율주행의 현주소’를 주제로 제21회 자산어보 행사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최준원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은 AI 기반 자율주행 도입이 조금 늦었지만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평가하며 “빠른 시행착오를 통해 국내 기업들에게 양질의 데이터셋이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투자가 활발하다. 테슬라는 E2E 모델 학습을 위해 실주행 기반 데이터 수집과 자동 레이블링(auto-labeling),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학습 데이터 가공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또 3차원 공간 인지를 위한 점유망(occupancy) 기반 모델과 신경망 주행계획(Planning) 모델을 적용해 FSD(Full Self-Driving) v12부터 E2E 자율주행을 고도화했다.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안전 요원이 동승하는 조건으로 제한적 로보택시 시범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중국 업체들도 추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리 오토, 포니AI, 샤오펑(Xpeng), 화웨이 등이 E2E 자율주행 제품을 내놓고 일부 실증 단계에 있으며, 비전-언어모델(VLM)을 접목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최준원 교수는 “해외 위주의 공개 데이터셋은 다양성이 부족해 오버피팅 문제가 심각하고,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국내에서 E2E 자율주행을 견인할 수 있는 레퍼런스 기술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을 주도할 수 있는 전문 기업을 발굴·육성해야 한다”며 “데이터 수집부터 전처리, 오토라벨링, 시나리오 분류, 검증, 학습데이터 구축까지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소프트웨어(SW) 툴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내 업계가 직면한 현실적 과제도 제기됐다. E2E 자율주행은 고도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 수준의 인건비로는 우수 인재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 테슬라처럼 대규모 투자를 통한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양산 중심의 개발 프로세스와 온디바이스(On-device) AI 하드웨어 부재도 도입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꼽혔다.
곽수진 한자연 본부장도 “표준화되지 않은 독자 기술로는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없다”며 SDV 구현을 위한 SW 플랫폼화와 표준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 본부장은 이어 “SDV 대응을 위한 HW와 SW 공급 체계 분리는 자동차와 IT 분야 모두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며 “국내 SDV 관련 부품·SW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국가 표준 개발이 선행돼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SDV API 표준 제정에서 앞서가고 있다. 완성차, 부품, 전자·IT 기업들이 참여한 국가표준이 개발됐으며, 통합제어기 SW를 3개 계층으로 분리하고 2종 인터페이스 API 표준을 제정했다. 응용 서비스 영역이 세분화되며 IT 산업의 소프트웨어 역량이 강화되고, SDV 혁신 속도도 빨라졌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데이터 인프라와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생태계 조성이 뒷받침돼야 한국이 글로벌 E2E 자율주행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