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2026년 1월 1일,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유예 기간인 ‘전환 기간’을 종료하고 본격적인 시행 단계로 진입한다. 이제부터 EU 국경을 넘는 한국산 철강·알루미늄 등 6대 품목에는 실제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탄소 가격표’가 의무적으로 부착된다. 기후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세워진 ‘녹색 보호무역’ 장벽이 선언적 구호를 넘어, 우리 수출 기업의 실질적 재무 리스크가 된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산업의 쌀’ 철강이다. 한국의 대(對)EU 수출액 중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사들은 2026년부터 수출품 1톤당 발생하는 탄소 비용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거나, 영업이익을 깎아서라도 감내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분석에 따르면, CBAM 본격 시행에 따른 국내 철강 업계의 추가 부담액은 연간 3,000억 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중국산 저가 공세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 하락이라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결국 전기아크로(EAF) 비중을 늘리고 수소환원제철(HyREX) 상용화를 앞당기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지만, 막대한 설비 투자와 기술적 난이도로 인해 2026년은 고통스러운 과도기가 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에 부품과 소재를 납품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이다. CBAM은 제품 생산 과정의 직접 배출뿐만 아니라, 전력 사용 등 간접 배출까지 산정 범위에 포함해 엄격히 관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소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검증받을 인력과 시스템을 갖춘 중소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2026년부터 EU 바이어들은 탄소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는 기업을 공급망에서 배제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컨설팅 지원에 나섰지만, 수천 개에 달하는 협력사를 모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현장에서는 “탄소 데이터를 못 맞춰서 수출길이 막히는 ‘탄소 절벽’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진다.
2026년은 CBAM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EU는 현재 철강 등 6대 품목 외에 유기화학물질과 플라스틱(폴리머)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정유·석유화학 산업까지 영향권에 들어간다.
미국 역시 청정경쟁법(CCA) 등 독자적인 탄소국경세 도입을 논의하고 있어 2026년은 전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무역 장벽'으로 치환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이제 탄소 감축은 단순한 ESG 경영 차원을 넘어 재무제표의 숫자를 바꾸고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됐다.
2026년, 한국 산업계는 '저탄소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도약하느냐, 휩쓸려 사라지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확실한 것은, 탄소를 줄이지 못하면 더이상 물건을 팔 수 없는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