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디지털 서비스가 국민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파편화된 디지털 재난 규제를 하나로 묶어 중복 규제를 해소하고 국가적 재난 대응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모법 제정이 추진된다.
산업계는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재난안전관리법’(가칭)의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적용 단계에서의 규제 모호성과 행정 부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재난안전관리법 제정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서는 인터넷, 통신, 데이터센터 등 주요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현장의 실효성을 고려한 세밀한 법안 설계와 규제 중복 해소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김영규 실장은 ‘디지털 재난’의 정의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김 실장은 “상세 내용을 보며 ‘물리적·기능적 결함, 트래픽 양의 과도한 변동 또는 전송 속도 저하 등 장애·중단’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부가통신사업자 입장에서 애매모호하게 느껴진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디지털 재난의 범주를 보다 명확하고 한정적으로 정의해야 불필요한 규제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행정 절차와 관련해서는 “1년 내내 계획서만 제출하다 끝난다”는 현장의 어려움을 전하며 행정 절차의 일원화를 요구했다.
통신사업자연합회 송철 실장은 실질적인 사고 예방을 위한 프로세스 개선을 제안했다. 송 실장은 굴착 공사로 인한 단선 사고 방지와 관련해 “정보 공유 체계를 현재의 주요 기관에서 실제 공사를 수행하는 현장 업체와 시공업체까지 확대되도록 명확히 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서비스 장애 시 주요 사업자 간 상호 통보 절차를 신설해 이용자 보호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데이터센터(DC) 업계에서는 시설 등급 지정에 따른 물리적 설비 기준의 현실화를 촉구했다. 데이터센터연합회 강승훈 팀장은 “이미 완공된 데이터센터에 변전소 이원화 등 A등급 기준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논의되는 기준인 2만 2천500㎡ 이상의 대규모 시설 지정 시, 기존 건물의 구조적 한계를 고려한 유연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타 부처와의 중복 규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소방청 등에서 데이터센터를 특별 관리 대상 시설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상황에서, 신설법이 또 다른 규제 층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강 팀장은 “새로운 점검 규정을 신설할 때 반드시 디지털 재난 전담 기관과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제약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 재난과 시설 유형화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정림건축 안정택 대표는 “데이터센터가 AI 학습용, 추론용, 클라우드용 등으로 유형화되고 있는 만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폭우나 산불 등 기후재난과 데이터센터의 위치적 특성을 함께 고려한 세부내용도 논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러한 산업계의 우려를 수렴해 법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성욱 과기정통부 과장은 “전담 기관은 규제 강화가 아닌 노하우 축적과 전문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며 “중소 규모 사업자에게 과도한 의무를 지우지 않는 등 유연하게 운영하겠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번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바탕으로 국회와 협의해 조속한 법안 발의와 제정을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