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기업의 성장 배경과 발전 가능성
혁신의 배경은 우수 R&D 인력 공급
대만 기업이 개발 역량까지 확보해 서구 IT 기업의 최적 파트너로 성장한 배경은 저렴한 우수 R&D인력의 공급을 들 수 있다.
대만 기업의 엔지니어 연봉은 미국 엔지니어에 비해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미국이나 한국, 일본의 엔지니어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타이베이에서 남쪽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는 신주과학공업원구(新竹科學工業園區, 이하 신주)가 위치하고 있다. 아시아의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이곳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모방해 80년대부터 조성됐다. 현재는 대만 반도체 매출의 80%를 올리고 있고, 정부 주도로 성공한 대표적인 첨단산업단지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는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ndustrial Technology Research Institute, 이하 ITRI)이 자리잡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인 ITRI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 비유되면서 대만 산학연계의 핵심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로 성장한 TSMC (Taiwan SemiconductorManufacturing Co.)와 UMC(United Microelectronics Co.)도 ITRI의 사내 벤처에서 시작했다.
ITRI의 강점은 기초 과학보다 응용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업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미국 MIT, 버클리(Berkley), 카네기 멜론(Carnegie Melon) 대학의 과학자들과 제휴를 맺는 등 대만 R&D 인력의 핵심 공급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만 기업, 브랜드 사업까지 강화중
최근 대만 기업들은 브랜드 사업으로도 그 영역을 점차 확대하며 사업 모델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조립 기지에서 출발해 R&D 역량 확보, 자체 브랜드 사업 확대로 이어지는 대만 기업의 발전과정은 마치 한국 IT 대기업 성장사의 복제본을 보는 듯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벤큐를 들 수 있다. 대만 최대 휴대폰 기업인 벤큐는 지난 6월 세계적인 휴대폰 업체인 지멘스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인수했고, 내년 1분기 벤큐-지멘스의 공동 브랜드 휴대폰 출시를 앞두고 있다. 벤큐의 CEO인 리건야오 회장은 OEM 사업만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고 판단하고 자체 브랜드사업 강화를 천명하고 있다.
대만의 대표적인 PC 제조업체인 에이서 역시 꾸준히 브랜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처음 도시바(Toshiba)를 밀어내고 세계 5대 PC 메이커로 부상한 에이서는 올 2분기에는 시장 점유율 4.4%로 세계 4위 업체로 부상했다.
이 기업을 자본 시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PC 브랜드”라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미국 LCD TV 시장에 진출을 선언하는 등 브랜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자인 역량과 스피드도 수준급
현재의 성과만으로는 대만 기업의 글로벌 메이저 브랜드 도약 가능성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대만 기업의 브랜드 사업에 대해선 아직까지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응용 기술 및 디자인 능력은 뛰어나지만, 원천 기술이 부족하고 현재 브랜드 사업의 성과도 대부분 중국 및 대만시장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벤큐의 지멘스휴대폰 사업부문 인수에 대해서도 조속한 시일 내에 수익성 확보에 실패할 경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IT 기업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대만 기업이 글로벌 업체로 도약할 가능성을 무시하기만은 어렵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처음에는 글로벌 업체의 생산 기지로 출발해 자체적으로 R&D 역량을 쌓으며 도약을 준비하다 휴대폰을 비롯한 IT 산업의 부흥기에 과감한 마케팅 투자로 급격히 성장했다.
대만 기업들도 생산과 디자인 경험은 이미 충분히 쌓았고 마케팅 및 고객 대응과 같은 소프트 역량들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실제로 벤큐는 지난 1월 세계 최대의 가전 박람회인 CES 2005에서 4개의 혁신 제품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세계적인 가전 디자인 어워드인 2004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10개, Red Dot 디자인 어워드에서 6개의 디자인 상을 수상하는 등 디자인 능력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검증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 기업의 기업 고객 대응 속도도 상당한 수준이다. 장기간 ODM 및 OEM 업체로 성장한 대만 기업들은 고객의 요구에 가장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추고 있다. 2004년 인텔(Intel)은 무선 인터넷용 센트리노(Centrino) 칩을 개발한 후, 자사의 칩을 탑재한 노트북을 가장 먼저 만들 수 있는 업체로 대만 업체인 에이서를 선정했다. 3개월이 지난 뒤 에이서는 고가 노트북뿐 아니라 중저가 라인업 노트북까지 생산해 냈다. 신기술을 제품화하는데 걸린 시간이 단 3개월이었다. 이런 신속한 기업 고객 대응 능력은 휴대폰 시장에서 그 활용 가능성이 높다.
한국 휴대폰 기업들이 대형 통신 사업자들과 밀착해 사업자 요구에 맞춘 제품을 적기에 출시하며 성장해 왔듯이 대만의 휴대폰 기업들이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인 및 생산 경험이 풍부한 중저가 휴대폰 시장은 대만 기업의 주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기업의 대응전략
근본적인 경쟁 우위 확보 이뤄져야
최근 대만 IT 기업의 행보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먼저 대만 기업들이 서구 기업의 R&D 소스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IT 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도 대만 기업들을 활용해 적극적인 아웃소싱을 추진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섣부른 아웃소싱은 경계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늘리면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한 원천기술 우위와 브랜드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부족한 우리나라 기업이 개발과 생산을 분리할 경우, 기존의 강점이라 여겨지고 있는 프리미엄 제품의 선출시 능력이 현저히 저하될 위험이 높다.
양극화된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아웃소싱을 고려하더라도, 아웃소싱을 통해 실제로 어디에서 돈이 아껴지는지, 기존 강점을 훼손시키지는 않는지, 고객은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 들일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대만 기업의 브랜드 사업 강화에 대해선 철저한 차별화로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 대만 기업들이 메이저 브랜드 업체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 적어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만큼은 우리나라가 또다른 강한 경쟁자를 만난 것이 분명하다.
우리 기업들도 기존의 강점만을 고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비록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 주도적 기업이 될 수 있는 지속적 혁신이 필요하다.
김원정 기자(news@daar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