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올해 하반기 한국 제조업이 잇따른 무역협정 발효로 관세 인하 혜택을 맞이하지만, 산업계에서는 “받쳐줄 체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유럽연합(EU)과의 관세 완화 합의가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 주력 품목의 수출 여건을 개선할 수 있지만, 제조업 경기 전반이 여전히 부진해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무역투자연구센터의 ‘2025년 7월 글로벌 및 주요국 경제동향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7월 한국의 총수출은 608억 2천만 달러로 역대 7월 중 최대 실적을 내며 2개월 연속 증가했다.
15대 주력 품목 중 반도체(+31.6), 자동차(+8.8), 선박(+22.4) 등 3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했으며 특히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의 고정가격 상승으로 147억 1천만 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이차전지(-21.1%), 철강(-2.9%), 석유제품(-6.3%) 등 주력 품목 상당수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주요 국가별로 보면, 최대 교역국인 중국 수출은 3.0% 감소하며 110억 5천만 달러를 기록한 반면, 미국 수출은 IT 품목과 15대 외 품목 선방으로 소폭 증가하며 103억 3천만 달러(+1.4%)를 달성했다. 특히 7월 최대 수출 증가 지역인 아세안 시장은 반도체 수출이 1.5배 증가하며 109억 1천만 달러(+10.1%)를 기록했다.
한편, 미국이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7일부터 본격 발효되며 하반기 통상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은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2천억 달러 펀드 투자, 1천500억 달러 조선업 지원, 1천억 달러 미국산 LNG 수입을 약속했고,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요 수출품에 추가 부담을 안게 됐다.
이 가운데 미국의 관세정책이 단기 조정이 아닌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무역협회의 ‘미국 관세정책의 목표 상충과 고착화 우려’ 보고서는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 억제와 제조업 보호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지만 설정한 정책목표 간 본질적이 상충구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재정 수입 의존도가 커지면 향후 관세정책의 후퇴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은 CHIPS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인프라 투자법(IIJA) 등 대규모 산업정책을 통해 해외로 이전했던 생산이나 사업을 다시 본국으로 들여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촉진해왔다. 그러나 정책 목표와 산업 현실 간 괴리로 인해 기업의 투자 유보, 인력 및 공급망 병목 현상, 비용 경쟁력 저하 등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무협 미주본부에서는 “리쇼어링보다는 우방국으로 생산 설비를 이전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또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더욱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 산업계 전반의 인식”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대외 환경은 한국 제조업 경쟁력 또한 약화시킬 수 있다. 관세가 낮아져도 가격·품질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출 확대 효과는 제한적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환율·원자재 가격 등 외부 변수도 부담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천380~1천42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변동성이 커졌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75달러 수준에서 하방 압력과 반등 가능성이 혼재돼 있다. OPEC+의 증산 여부, 미·중 경기 부진 등이 향후 유가와 교역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관세 인하와 함께 일부 품목 수출이 개선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 다변화·핵심소재 국산화·고부가가치 산업 전환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고율 관세 품목에 대한 재협상, 전략 품목의 해외 의존도 축소, 그리고 제조업 전반의 디지털·친환경 전환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