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실제 정년을 채우고 은퇴하는 근로자는 17.3%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만 65세로 늘리는 것은 또 다른 ‘정년 양극화’를 초래할 뿐입니다.”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6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같이 말하며 정년 65세 연장 논의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교수는 현재 정년제의 혜택이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 등 일부 계층에만 쏠려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82.7%의 근로자가 법정 정년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추진되는 정년 연장은 세대 간, 기업 규모 간 소득 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구조적 개선의 선행을 역설했다.
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60세 정년 퇴직자가 정년 연장으로 받게 될 임금은 연간 1억 원을 상회하는 반면, 연금 수급 공백으로 인한 손실은 연간 약 2,400만 원 수준이다. 그는 “이 같은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1억 원의 임금을 보장하는 정책에 대해 청년세대가 얼마나 수긍할 수 있겠느냐”며, 청년 일자리 문제와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 대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발제에 나선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역시 고용 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했다. 권 교수는 이제 기업이 근로자와의 고용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 그 자체를 보호하는 포괄적인 보호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용의 형태와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의 노동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법제가 재설계돼야 한다는 취지다.
권 교수는 특히 “정년 제도는 인구 구조 변화와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소멸될 운명”이라 진단했다. 그는 국가가 개별 기업에 고용 연장의 부담을 전가하기보다는, 근로자가 직장을 떠난 뒤에도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사회 안전망을 두텁게 구축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신정욱 공인노무사는 현장의 혼란을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 중인 포괄임금제 폐지와 정년 연장이 맞물릴 경우, 임금 체계 개편을 둘러싼 노사 간의 지뢰밭이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년 연장이 단순히 근무 기간만 늘리는 문제를 넘어, 기존의 고정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할지 여부 등 임금 계산 방식을 두고 노사 간의 치열한 대립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 노무사는 특히 중소기업의 대응 능력을 우려했다. 그는 “지불 능력이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임금 체계 개편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기 매우 힘들 것”이라며 “입법 과정에서 임금 수준 저하 방지 등 경영계의 부담과 노동계의 요구를 세밀하게 조율하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제도 변화가 현장의 법적 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조속히 정상화해 소모적 대립을 넘어서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