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산업통신 표준기구 ODVA의 사장 겸 총괄이사 알 베이던(Al Beydoun) 박사가 방한해 한국엔드레스하우저 서울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방한은 2026 자율제조AI 월드쇼(AMWS 2026) 참석과 TAG Korea 미팅, 국내 회원사 방문 등으로 이어지며, 한국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일정으로 채워졌다.
알 베이던 사장은 “한국 시장을 더 깊이 이해하고 현지 회원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이번 방문의 목표”라며 “AMWS 2026은 머신러닝, 디지털 트윈, 로보틱스 등 자율 제조 기술의 최신 흐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어 “TAG Korea와의 논의를 통해 향후 전시·세미나 계획과 회원 확대 전략을 구체화하고, 한국 기업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장기적인 협력 기반을 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계층형에서 ‘전면 연결’로…산업 통신 구조가 바뀐다
산업 자동화가 고도화되면서 공장 네트워크 구조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상위·하위 제어 계층이 구분된 전통적인 구조 대신, 설비·라인·MES·클라우드가 하나의 이더넷 기반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묶이는 방향이다.
알 베이던 사장은 변화의 촉매로 단일쌍 이더넷(SPE), 5G·Wi-Fi 같은 무선 네트워크, OPC UA·PA-DIM 등 데이터 모델, 그리고 AI 확산을 꼽았다. 그는 “EtherNet/IP는 표준 이더넷과 TCP/IP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SPE·무선·OPC UA 같은 기술과 결합해 공장 전체의 연결성을 높이는 데 유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SPE는 소형 센서, 버튼, 모터 스타터처럼 기존에는 필드버스나 단순 I/O로만 연결되던 장치들을 직접 이더넷에 편입시켜, 현장 데이터 수집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5G와 Wi-Fi는 이동체·물류·원거리 설비에서 케이블 없이 고속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주고받게 만들고, OPC UA·PA-DIM과 같은 표준 데이터 모델은 설비·라인·설비 제조사마다 달랐던 데이터를 공통 언어로 정리해 에너지 관리와 생산 최적화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
■ “AI, 전문가 전유물에서 현장 운영자의 도구로”
AI는 이미 일부 공정에서 품질 검사나 예지보전에 활용되고 있지만, 알 베이던 사장은 “앞으로는 AI가 특정 데이터 전문가가 아니라 현장 운영자 수준까지 내려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표준화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면서, 공장 안에서 AI 기능이 ‘특수 시스템’이 아닌 기본 옵션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AI 분석 시스템은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산 효율, 품질, 에너지 사용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 또 설비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유지보수 일정을 미리 계획하게 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다운타임을 줄이는 역할도 한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처럼 정밀성과 수율이 핵심인 산업에서는 이러한 기능의 가치가 더욱 크다.
그는 “EtherNet/IP는 머신비전 기반 불량 검출, AI 예지보전 모델 구축에 필요한 고해상도·고빈도 데이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단순 수치뿐 아니라 데이터의 의미와 맥락까지 함께 전달해, AI가 더 똑똑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반도체·배터리·자동차…한국이 보여준 ‘빠른 채택’
알 베이던 사장은 한국을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첨단 제조가 집중된, 기술 도입 속도가 빠른 시장”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생산성·품질·비용 경쟁력을 위해 AI 기반 기술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현장 작업자가 AI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에이전틱 AI(Agentic AI)와 같은 기술은 운영자에게 공정 상태와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설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제안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설비 이상을 미리 감지해 다운타임을 줄이고, 운영자의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현장 동료’에 가까운 형태다. 이 과정에서 공장 안팎의 데이터를 끊김 없이 전달하는 통신 인프라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 전자·자동차·조선…‘스마트 제조’ 성장축에 주목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로 그는 전자, 자동차, 조선 산업을 꼽았다. 한국 정부가 스마트 제조·첨단 로보틱스를 전략 산업으로 지원하고 있는 만큼, 로봇·비전·AI를 결합한 고도 자동화 수요가 계속 늘 것이라는 분석이다.
AI 기반 비전 시스템은 용접 품질 검사, 물류 피킹, 최종 외관 검사 등 다양한 공정에서 사람 눈이 놓칠 수 있는 불량을 잡아내고, 3D 머신비전은 반도체 패키징·부품 조립처럼 미세 위치 오차가 치명적인 공정에서 정밀도를 높여준다. 이미 로봇 사용률이 높은 조선·자동차 공정에서는 여기에 예지보전·경로 최적화 같은 AI 기능이 더해지면서, 설비 가동률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알 베이던 사장은 “한국은 ODVA 글로벌 전략에서 핵심 시장 중 하나”라며 “이번 방문에서 얻은 현장 인사이트를 EtherNet/IP 기술 로드맵과 표준화 작업에 반영해, 한국 회원사와 함께 자율 제조 시대에 맞는 산업 통신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