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경질류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의 44조 1천억 원대 가격 담합 행위에 대해 본격적인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오행록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7일 브리핑에서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의 담합 사건에 대해 심사관이 조사한 행위 사실, 위법성 및 조치 의견 등을 기재한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하고 피심인들에게 송부했다”며 심의 절차가 개시됐다고 밝혔다.
국내 경질류 판매 시장은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제품을 주유소나 도매업체에 공급하는 구조다. 지난해 기준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S-OIL 등 4개사가 전체 점유율의 약 98%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과점 시장 형태를 띤다. 오 국장은 조사 대상 경질유가 국민 생활과 경제 활동에 필수적인 자원인 만큼 과점 구조가 담합의 유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심사관은 이들 기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2년 2월부터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올해 3월경까지 약 4년여에 걸쳐 가격 정보를 교환하고 담합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는 주유소 등에 잠정적으로 적용하는 ‘입금가’, 다음 달 초 최종 정산에 적용하는 ‘확정가’, 그리고 판매 정책 등을 지속해서 공유했다. 오 국장은 “전쟁 상황에서 급변하는 국제 유가가 정보 교환 시작의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행위는 단순 정보 교환에 머물지 않고 중동 전쟁 발발 직후 직접적인 가격 담합으로 이어졌다. 오 국장은 “2022년부터 올해 초까지는 가격 정보 교환 수준에 머물렀으나 3월 초 두 차례에 걸쳐 특정 가격을 결정하자는 합의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담합 행위로 영향을 받은 전체 매출액은 총 44조 1천억 원 규모다. 다만 실질적인 가격 담합이 이뤄진 시기는 마지막 두 차례에 불과해 매출액 대부분은 정보 교환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됐다.
과점 체제를 이루는 4개사 중 2개사만 심의 대상에 포함된 이유도 명확히 했다. 공정위는 세 차례 현장 조사와 진술 조사를 진행했으나, GS칼텍스와 S-OIL의 법 위반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오 국장은 심의 대상이 2개사인 데 대해 두 회사의 합산 시장점유율이 49%에 달해 경쟁 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별도 고발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검찰 요청에 따라 관련자를 이미 고발했기 때문에 추가 고발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피해 여부와 관련해 공정위는 소비자 가격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분석하지는 못했으나, 주유소 공급 가격 변동에 따라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정위 심사관은 두 기업의 행위가 공정거래법 제40조 제1항 제1호의 ‘가격담합’과 동 제9호의 ‘정보교환 담합’에 해당하는 중대한 위반 행위라고 판단해 시정 조치 및 과징금 부과 의견을 냈다. 피심인들은 심사보고서 수령일로부터 8주 내 서면 의견 제출과 증거자료 열람·복사 신청 등 방어권을 보장받는다. 공정위는 해당 절차가 종료되는 대로 신속히 위원회를 개최해 구체적인 과징금 규모 등 최종 판단을 내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