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점점 더 메말라가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가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곳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그마저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정부의 지원을 다만 얼마라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말까지 일산의 킨텍스에서는 한국전자전을 비롯해 포장산업전, 로봇월드, 소재부품산업주간 행사 등 다양한 전시회가 쉼 없이 이어졌으며, 국내외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기술을 견주는가 하면 국내외 바이어들과도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파트너십을 형성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에 참가한 중소기업들 대부분은 기나긴 불황의 늪에서 자구책을 찾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시회에 참가하거나 전시회 자체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연례행사처럼 참가한 업체들도 상당수였다.
본지에서 전시회에 참가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이들 중소기업의 대다수는 현재 정부에서 펼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들의 필요에 적합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야기된 현장의 위기감은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경영자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금융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받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워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라고 쓴소리를 남겼다.
연마업계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인은 “연마산업에 종사하는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업체인데 정부가 정책적으로 실수요업체에 대한 투자나 지원 폭을 넓혀줘야 시장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엔진을 만들고 있는 한 중소업체는 정부의 지원에 대해 “세계적인 불황이 이어지면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화정책도 크게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 뒤, “정부가 중소기업에 육성자금을 지원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실 시장판로를 정부가 제공해 주는 것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더 피부로 와 닿을 것”이라고 말해 중소기업들이 판매처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토로했다.
덧붙여 이 중소업체 관계자는 “정부기관이 의무적으로 중소기업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제도화하면 많은 중소기업들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한 중소 강관업체는 “개발에서는 원가계산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고, 직접 개발에 뛰어들면서 인건비 대비 수익이 발생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정부의 지원이 좀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함을 시사했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 종류는 많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은 정부가 융자, 보증 수단을 통해 미래 유망한 중소기업 성장 발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행위의 하나로, 지원방식에 따라 신용보증, 직접대출, 은행을 통한 간접대출, 출자 등으로 분류된다. 최근, 불안정한 경기 속에 중소기업의 은행대출 접근성이 떨어짐에 따라 정책금융을 통한 중소기업의 자금수요 충당은 지속 증가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중소기업금융은 대기업보다 주식·회사채 등 직접금융 의존도는 낮지만, 은행대출을 통한 간접금융 의존도가 매우 높아 2013년 말 기준으로 전체 중소기업금융 가운데 은행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98.5%에 달할 정도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금융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은행이 중소기업대출 비중을 축소하면서 자금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은행의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대출 비중은 91%에 육박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하락해 2013년 말 현재 75.2%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 중 정부의 중소기업 금융지원이라 할 수 있는 보증서부대출, 중소기업진흥공단 대리대출, 한국은행의 금융중개지원대출 등이 약 20% 수준으로, 순수 중소기업대출 비중은 더욱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은행 건전성 기준 적용과 불안정한 경기상황에 따른 신용 관련 위험노출 축소를 위한 은행들의 보수적 대출행태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경기불안정성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을 통한 중소기업 자금수요를 충당하기는 쉽지 않음에 따라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정책금융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형국이다.
중소기업 정책금융 지원방식을 살펴보면 지원방식에 따라 크게 신용보증, 직접대출, 은행을 통한 간접(대리) 대출, 출자 등의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단 신용보증 및 보험은 정부와 지자체 출자기관인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지역 신용보증재단이 중소기업의 신용 또는 담보의 보강을 통해 해당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신용보증기금은 신용보증준비금과 정부출연금을 기반으로 담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보증을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며, 최근에는 녹색성장기업, 유망서비스기업, 일자리창출기업, 경영혁신기업, 성장동력산업 등 특화기업에 대한 보증이 확대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은 담보능력이 미약한 신기술사업자에 대한 채무보증지원 및 보증연계 투자, 기술평가, 기술 및 경영지도, 신용조사, 신용정보 종합관리 업무 등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며, 지역 신용보증재단은 지역별로 담보력이 부족한 소기업, 소상공인 등의 채무에 대한 보증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지원한다.
직·간접대출의 경우 지자체 및 공공기관을 포함한 정부 대출제도로는 ▲한국은행 금융중개
지원대출 ▲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중소기업대출 ▲ 중소기업청 이외 부처 또는 지자체 실시 직·간접대출 ▲ 정책금융공사 On-lending 대출 등으로 구분된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금융기관이 취급한 중소기업 대출실적을 토대로 총액 한도 내에서 한국은행이 은행별로 저리자금을 지원하는 제도이며, 중소기업진흥공단 정책자금대출은 중소기업청이 위탁 운영하는 제도로 중소기업기본법상의 중소기업에 대해 저리의 자금을 공단추천-은행대출의 대리대출 방식과 공단 직접대출 방식으로 진행되며 중진공 홈페이지에서 융자신청, 접수, 융자 대상 결정 후 중진공(직접대출) 또는 금융회사(대리대출)에서 신용 또는 담보부(보증서 포함) 대출을 실행하는 제도다.
정책금융공사의 간접(on-lending)대출은 정책금융공사가 지원대상 중소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자금을 금융회사에 공급하며, 금융회사는 대상 중소기업을 발굴, 심사해 대출실행 여부 및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제도이다. 대출 대상은 금감원 표준신용등급 체계상 6~11등급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으로 사업연도 매출실적이 10억 원 이상인 기업이 거래은행에서 신청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전시형 정책 아닌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중소기업 숨통 틔워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제도를 살펴보면 취지와 종류에서는 부족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이 중소기업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IBK 경제연구소의 동학림 연구위원은 “현실과 맞지 않는 정책과 지나친 규제 등으로 인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연구원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중소기업정책이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상세히 점검해보면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현실과 맞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정책, 성과평가지표가 정책 목적과 일치되지 않아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정책 등 애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례들이다.
법적 제약도 여전한 장벽 가운데 하나다.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소기업 M&A를 통한 투자자금 선순환이 중요하지만, 세법은 오히려 이를 막고 있다. 중소기업 M&A 시 양도세나 세율이 50%에 이르는 증여세를 부과하는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가업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상속세 감면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공제한도가 300억 원에 불과하고 대상도 제한적이다. 요건도 아주 까다로워 현실적으로 충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중소기업 R&D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국가 R&D 예산 중 중소기업 R&D비중은 19.7%에 불과한 반면, 대기업 R&D는 56.9%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보편적인 지원을 하기보다는 역량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밀한 정책설계로 실행력을 확보해서 지원정책이 목적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국가의 재정능력이 국력을 나타내는 시대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재정상태가 양호한 편이기는 하다. 그러나 중소기업 R&D 등 필수적인 지원부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제한된 재정재원으로 정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성과평가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정책지원의 사후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이제 지원정책의 국민경제적 효과를 분석하고 기업별로 지원성과를 점검해야 한다. 성과평가 시에는 평가지표가 정책목표와 부합해야만 높은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를 들면,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에 보증(대출)을 지원하고 있는 신용보증기금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기관은 적정 규모의 손실을 허용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원기관은 보수적인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아니라 ‘이미 성장한 기업’이 지원을 받는 예상외의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나라가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의 변신이 필요하다. 나비가 허물을 벗듯 새로운 탈바꿈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강건한 경제구조가 안착될 것이다. 기존의 모방과 답습에서 벗어나 높은 비전을 가지고 ‘나만의 기술’로 자생력을 갖추어 세계를 향해 가지 않으면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정책은 양적으로는 이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에 있다.
이제 총량보다는 정책 목적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실을 기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존의 ‘보호 육성’이라는 틀을 깨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선도형 경제를 추진할 수 있도록 정책수립과 운영이 정밀하고도 전략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동 연구원은 언급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너무 광범위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거부하고 중소기업에만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현경 산업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현행 기준에서의 중소기업은 그 범위가 상당히 넓고, 중견기업 또한 그러하지만, 지원정책이나 규제는 넓은 범위에 걸쳐 있는 기업들의 차이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뒤, “기업의 규모가 일정 경계(threshold)를 넘어서는 순간 지원이 끊기고 게다가 대기업 수준의 규제를 받게 돼, 기업들은 이러한 상태를 피하려고 회사를 분할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계속 작은 기업으로 머무는 소위 피터팬 증후군을 발생시킨다”고 꼬집었다.
최 연구원의 주장에 따르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나뉘어 수행되었던 기업정책하에서 대기업에 준하는 규제를 받아온 중견기업을 새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청에 이관시킴으로써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중견기업을 중소기업과 유사한 지원정책으로 성장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최 연구원은 “중견기업도 그 규모가 상당히 다양한 만큼 좀 더 세분화해 각 규모에 맞는 정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최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진행된 정부의 지원정책의 틀 자체를 새로 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정책은 대부분 보호를 위한 지원정책이었다. 그러나 지원정책만으로 기업에 성장의 유인을 줄 수 없음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지극히 미미한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고 언급한 최 연구원은 “정부는 건실한 중견기업 육성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큰 틀을 설정하고 방향을 세웠다기보다는 세부적인 지원정책들만을 수립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최 연구원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는 작은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필요한 합리적인 기간에만 지원과 보호를 해야 한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보호한다면 시장에는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넘쳐나고 애초에 시장에 진입하지 말았어야 하는 비효율적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진입하게 된다.
작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정책보다 어떻게 또 언제 지원을 축소하고 중단할 것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이다.
정부의 기업정책은 시장에 진입할 만한 기업이 진입하게 해야 하고 계속 생산활동을 할 수 있게끔 효율적인 기업들만이 시장에 존재할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짜여져야 한다.
덧붙여 최 연구원은 “중소기업 지원정책이라 하더라도 지원은 절대 항구적이어서는 안된다. 끊임없는 쇄신과 혁신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기업에만 지원을 지속하지 않는다면 건전한 중견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결실을 맺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