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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주)서울엔지니어링 이해양 상무, 엔지니어링,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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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주)서울엔지니어링 이해양 상무, 엔지니어링, 너는 내 운명!

엔지니어 정신으로 정도(正道) 걷는 최고 경영자 목표

기사입력 2006-07-08 10: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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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일보]
연 매출액 400억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제철소 관련 부품 생산 업체 (주)서울엔지니어링. 이 회사의 성공 뒤에는 23년간 변함없이 이 분야의 기술개발에 매진해 온 이해양 상무가 있다. 실제로 그의 이름에는 마그네슘 합금기술과 고로냉각용 스테이브의 국산화, 자동용접기 개발 등 무수한 공적들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이러한 빛나는 성과만큼 남몰래 흘려야 했던 땀과 눈물도 많았다.

[사람들](주)서울엔지니어링 이해양 상무, 엔지니어링, 너는 내 운명!
▲(주)서울엔지니어링 이해양 상무
강원도 홍천의 산골마을,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이해양 상무(43)는 일찍부터 가난의 아픔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때문에 그는 기술을 배워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해 1학년 때부터 기능경진대회를 목표로 실습에만 매진했다. 하지만 집안 어른의 조언으로 대학진학을 마음먹고 학업에 뛰어 들었으나 뒤늦은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3학년이 된 어느 날, 그는 삼성반도체와 (주)서울엔지니어링(www.seoul-eng.co.kr), 두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취업 의뢰를 받게 된다. 그때 이 상무는 대학진학을 접어두고 어떤 묘한 끌림처럼 주저 없이 서울엔지니어링을 선택했다고 한다. “삼성이란 대기업은 뒷전이고 왠지 ‘엔지니어링’이란 단어가 그렇게 멋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오늘의 실패는 내일의 성공을 다지는 약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가진 이 상무이지만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요일이면 한 끼니 식사를 해결할 돈이 없어 특근을 하라는 회사의 호출이 오히려 감사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난 후 회사는 부도를 맞게 된다. 하지만 300여명의 직원은 남은 재료로 제품을 만들어 팔면 빚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차압증이 붙은 기계를 돌리기 시작했다. 채권단이 들이닥칠 것을 염려해 공장의 모든 문을 폐쇄하고 몇 명의 감시조가 작업장 주변을 지켰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250명의 채권단은 사원들의 애사심에 감동해 차압증을 회수하고 공장의 제품 생산을 허용했다. 은행 역시 서울엔지니어링에 다시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엔지니어링은 ’94년도부터는 수출을 시작해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러던 중 ’97년 IMF 사태 이후 두 배로 급등한 환율은 오히려 호재로 작용해 서울엔지니어링은 12년 만에 법정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이 상무는 가장 힘들었을 때는 90년대 말 서울엔지니어링의 풍구가 적용된 광양제철소의 고로에서 사고가 발생한 때였다고 말한다. 사고의 원인분석 결과 풍구는 불량품이 아니었으나 이물질이 배출구에 들어가 열기를 밖으로 배출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는 서울엔지니어링의 제품은 쓰지 않겠다”는 원망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고 이 상무는 그 때를 회고했다. 하지만 그러한 쓴 경험이 이 상무를 기술 개발에 더 주력하게 만들었다.

이후 일본, 러시아 등으로 기술 연수를 다녀온 이 상무는 마그네슘 합금기술과 고로냉각용 스테이브 등을 국산화하고 자동용접기를 개발하는 등 관련업계를 놀라게 한 업적들을 쏟아냈다. 그 결과 현재 서울엔지니어링은 일본산 제품보다 우위의 성능을 자랑하는 제품을 절반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서울엔지어링의 풍구는 세계 최대 제철소인 미탈스틸을 비롯해 티센, 유에스스틸, 베스트알핀 등에 납품되며 그 우수성을 국제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이 상무에게 쓴 경험을 줬던 포스코 역시 서울엔지니어링에 대해‘부품 국산화를 통해 애국하는 기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기회는 노력하는 자에게 온다

“바쁜 농사철 해 뜨기 전 밭에 나가 어두컴컴할 때야 집에 돌아오셨던 부모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은 성실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자란 이 상무는 회사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꾀부릴 줄 모르는 성실성을 보여줬다.

어느 날, 관리직 주임이 이 상무에게 공장의 제고확인을 지시했다. 당시 주임이 제시한 날까지 제고확인을 마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상무는 하는 수 없이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제품들을 일일이 손으로 세며 제고를 확인했다. 장갑이 찢어져도 돈이 없어 맨손으로 작업을 하다보니 손에 상처도 났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일을 마무리 지었고 주임이 제시한 기한도 지켰다. 이에 감동한 주임은 자신이 퇴직하면서 주임 자리에 지금의 이 상무를 추천했다고 한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서울엔지니어링의 기능공은 현재 회사의 임원인 상무이사가 됐다. 임원 자리까지 오른 이해양 상무지만 여전히 성실함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운하다. 아침 7시 10분 출근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으며, 생산직 직원들과 함께 늦은 퇴근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엔지니어링은 가족경영을 철저히 배제하며 누구나 능력이 된다면 최고 경영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상무의 목표도 최고 경영자가 되는 것이다. 이 상무는 특히 창업주 오세철 사장처럼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평생 검소함과 성실함으로 사원들에게 모범이 됐던 사장님처럼 저도 투명한 경영으로 많은 부하 직원들에게 또 하나의 목표가 되고 싶다"고 이 상무는 말한다.

[사람들](주)서울엔지니어링 이해양 상무, 엔지니어링, 너는 내 운명!
▲이해양 상무가 작업중인 직원에게 기술조언을 하고 있다.

“열아홉, 그 젊은 날에 왜 그토록 엔지니어링이란 단어가 멋지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지금도 사무실보다는 현장에 나가는 것이 즐겁고 넥타이보다는 작업복이 더 편한 이 상무에게 엔지니어는 천직(天職)인 듯하다. “엔지니어들은 고집쟁이에 융통성도 없다”고 말하지만 그 고집스러움이 불량품 없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란다. 쇠 처럼 단단한 엔지니어 정신으로 정도를 걷는 최고 경영자가 되겠다는 이해양 상무의 다짐이 현실이 될 날은 멀지 않아 보인다.




미디어다아라 전은경 기자(miin486@daar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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