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년 7월 정부는 차세대 10대 성장 동력으로 로봇산업을 지목하고 연간 3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13년까지 세계 3대 지능형 로봇기술 강국으로 비상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는 KIST, ETRI 등 각종 정부출연연구소에서 특화된 로봇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로봇산업의 기반이 되는 관련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은 앞선 노력들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로봇에 대한 고조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8월 25일 한국공학한림원과 동아사이언스는 공동으로 ‘로봇태권V 현실 가능한가’란 주제로 ‘로봇태권V 10대 기술 심포지엄’을 열어 화제를 낳았다.
이날 행사에서 발표자로 나선 한국과학기술원 오준호 박사는 로봇태권V안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을 거론하며 만화속의 일들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들이 요구되는지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로봇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다종의 구동기와 센서, 막대한 양의 전력 공급과 지능을 담당하는 프로그램 장착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어진 결론은 우리가 가진 기계기술로는 대형 전투로봇의 현실화가 아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린시절 꿈속에 등장해 하늘을 날고 적을 물리쳐 주던 우리의 친구 로봇태권V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수호천사도, 강력한 초인간도 아닌 하나의 거대한 기계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미사일을 쏘며 이단 옆차기를 하는 로봇태권V의 모습이 상상이라면,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동작센서와 구동기 등의 기계부품들은 오히려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무심코 지나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듯 하다. 로봇의 화려한 모습이 부각될수록 그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수많은 부품장치들에 대한 무관심은 더 크게 드러난다. 이에 본고에서는 로봇을 구성하는 다양한 기계부품들의 중요성을 거론하고 해당 산업계가 안고 있는 현재의 당면 과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차세대 블루오션 로봇시장, 기반기술 탄탄한 일본이 선두
지능형 로봇산업은 현재의 자동차산업의 시장규모로까지 성장이 점쳐지고 있으며 첨단기술의 종합체로서 다양한 산업계에 파급효과가 지대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로봇산업에 대한 관심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지능형 로봇 개발에 대한 투자가 두드러지게 눈에 띤다. 이중 일본의 지능로봇산업은 자국의 기계, 전자,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강력한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로봇생산 1위 국가로 당당히 앞서가고 있다. 혼다의 아시모와 소니의 아이보, 큐리오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의 로봇들이 모두 일본에서 개발된 것들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기계부품강국들의 약진은 로봇산업 발전에 부품소재기술이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자력연구소, 한국기계연구소 등 정부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분야별 특화된 로봇 연구개발이 진행중에 있다. KIST는 네트워크와 연동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족 보행이 가능한 네트워크 기반의 휴머노이드를 개발중에 있다. ETRI는 URC와 네트워크 기반 로봇을 위한 네트워크 인프라 기술과 네트워크를 통해 전이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로봇, 지능형 서비스 로봇을 위한 핵심 컴포넌트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를 개발했으며 플랫폼 및 동작 중시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진로보틱스, 우리기술, 한울로보틱스 등 20개 이상의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엔터테인먼트 로봇, 퍼스널로봇, 홈 로봇 등의 지능 로봇개발 및 제품 출시도 이어지며 초기 시장을 닦아가고 있다.
로봇부품 선진국 의존도 높아, 국내 로봇부품산업 발전에 걸림돌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로봇산업계의 활기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기계부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은 아직까지도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 업체의 구동기, 감속기, 베어링 등과 같은 로봇 핵심부품에 대한 기술자립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며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센서나 정밀 모터 등과 같은 핵심 부품에 대한 국산화율은 20% 이하로 저조하다. 특히 고성능 액추에이터용 모터로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할 선형동기모터, 초음파모터, 초전도모터 및 고토크모터 분야의 국내 제품은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주요 센서인 초음파 센서, 가속도 센서, 각속도 센서, Beacon센서, 촉각센서, 비전 센서 등은 주로 로봇 선진국인 일본, 미국계 기업인 Polaroid, 아날로그 디바이스, Delphi, Honeywell, Videre Design, Teksan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로봇부품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로봇만을 위한 특화된 부품의 개발이 전무하다는데 있다. 실제로 로봇에 장착되는 대표적인 부품인 구동기, 센서, 소재, 임베디드 시스템 등은 일반기계 제작에 투입되는 것과 동일한 제품들이다. 이런 이유로 모터나 감속기의 경우는 기계전자 메카트로닉스 분야에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자이로드로, 가속도센서, 로봇용 눈 등 시각처리용 칩과 모듈이 국내 반도체 기술을 적용해 개발되고 있다.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연구 환경과 생산라인을 갖추지 못한 로봇부품산업의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기존의 부품소재산업이 안고 있던 기반기술 부족과 판매시장 확보를 위한 마케팅력 부족, 가격 경쟁력의 부재 등 고질적인 문제들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할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내 로봇부품산업계의 성장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국산 로봇부품에 대한 로봇제작업체들의 시큰둥한 반응이다. 부품 유저 업체들은 흔히 제품의 신뢰성을 문제로 지적하며 국산 부품을 도외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인증이나 특허를 받은 우수한 제품이라 할지라도 해외 유명기업에 납품돼 그 성능을 인정받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 업계에 만연한 의식이다. 또한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국내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외국의 부품을 수입해 적용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이들 기업들의 미시적인 판단은 국내 부품소재산업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실제로 반도체 공정용 로봇을 만드는 한 업체 관계자는 “국내 부품업계의 기반을 다지는 데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뢰성이 높은 외국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로봇관련부품 기술개발 지원…기업 자생력 키우는 프로그램 활성화 돼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로봇부품산업계를 위해 정부는 어떤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올해 초 산업자원부는 로봇이 하나의 산업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위치인식, 배터리, 소재와 같은 기술적인 과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어 지난해 32억원의 로봇분야 기술개발 자금 지원을 올해부터 해당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연간 1800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는 부품 소재기술개발사업에 로봇분야를 신설했다. 이와 함께 로봇분야 부품소재 로드맵 사업을 진행하는 등 이와 관련한 전문기업 육성을 꾀하고 있다.
산자부가 지정한 로봇분야는 센서, 인공눈, 인공피부, 임베디드 프로세서·제어기, 지능형 HRI, 초소형 구동기 및 감속기, 인공근육용 신소재 액추에이터, 소형 리니어 모터, 로봇손, 로봇용 고효율 등 10개 과제를 다루고 있다. 이중 현재는 로봇분야 중 구동기 및 감속기 관련 3개 과제, 인공눈 관련 1개 과제, 시각처리 칩 및 관성세터 1개 과제를 진행중에 있다.
정보통신부는 연간 30억원의 지원금을 투입해 초음파센서, 스테레오시각센서, 거리측정센서, 촉간센서, 관성센서 등 5개 센서분야에 대한 기술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중소기업지원 활성화 대책 협의회에 로봇전문 협의회를 개설해 20여개 관련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열린 해당 협의회에서 개발된 센서에 대한 판로 개척의 어려움이 지적됨에 따라, 6월 8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지능형 로봇 부품 매칭 페어’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행사를 통해 정통부는 해당 부처의 지원을 통해 개발된 우수한 국산 센서 제품들을 소개하고 부품개발업체와 로봇제작업체 간의 정보교류와 기술투자 기회를 제공했다. 이날 행사에서 정통부는 지능형 로봇산업에서 부품소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표준 기술의 부재와 판매처 확보의 어려움 등이 해당 산업 발전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앞으로도 지능형 로봇 부품의 수요자 및 공급업체간의 상생적 협력 강화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지원은 주로 기술개발에 대한 자금지원에 집중돼 있다는 점, 또 단발적인 행사 위주의 지원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실제로 로봇관련 부품을 개발중인 업체들은 정부의 지원정책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 이후에 발생하는 시장 확보를 위한 정보수집이나 효율적인 마케팅은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과제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정부의 지원을 바란다고 밝혔다.
로봇과 함께 관련 부품산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해
▲정부는 기술개발 자금지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업에 보다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로봇부품업체들은 특화된 제품개발과 기반기술을 확보함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다져가는데 주력해야 한다. ▲ 이와 함께 개발된 부품에 대한 공정한 성능 평가 및 인증체계의 구축과 운영을 통해 국산 제품은 신뢰성을 확보해 가야 한다. ▲특히 로봇 제작 업체들은 국산부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유관산업과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다져 가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반에 걸친 로봇부품산업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와 민간업체들에서 펼치고 있는 문화산업을 활용한 로봇에 대한 홍보나 국민 로봇 시범 사업 등은 로봇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좋은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이슈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유관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렇게 많은 과제를 안고 표류중인 국내 로봇부품산업의 현실 앞에서 듣게 되는 로봇태권V의 제작자 김청기 감독의 회고담은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지난 광복절, 남산 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에서 김 감독은 “70년대 우리말로 더빙된 일본애니메이션 마징가Z를 국산 만화로 생각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문제 의식을 느끼고 이에 대응할 로봇태권V를 만들었다”고 말해 자리를 가득 메운 청중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30년 전 문화침투에 대한 한 개인의 비판적 시각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기술침투에 대한 우려와도 영 무관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오는 10월 18일부터 22일까지 국내 최대의 로봇박람회인 ‘로보월드 2006’이 개최된다.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이라면 화려한 로봇의 움직임 속에서 묵묵히 작동하고 있는 부품소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료제공_ 대구기계부품연구원,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동아사이언스
미디어다아라 전은경 기자(miin486@daar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