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간산업을 보호하라”
기간산업 M&A 방어책 마련 본격화…한국 대표기업 위험 노출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등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 방어책을 마련하자는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SK㈜, KT&G 등이 외국계 투기자본에 혼쭐이 났고 포스코에 대해서도 M&A설이 끊이지 않는데 따른 움직임이다. 또 삼성전자, 현대차 등 한국의 대표기업들도 안심할 수 없다는 배경이 있다.
국내기업들은 IMF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무장해제된 상태다. 외자유치가 ‘발등의 불’이어서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대부분 철폐했기 때문이다. 적잖은 기업과 자산들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고, 그들은 되팔기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문제의 심각성은이제 칼날이 한국의 대표기업들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앞으로 미국인 투자자들이 내국인 수준의 보호를 받게되면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계 자본의 경영권 인수 시도가 더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현실은 미국이 ‘엑슨-플로리오(Exon-Florio)법’ 등 법적인 절차나 포이즌 필(poison pill ; 외국인 지분율을 낮추기 위해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인수하도록 하는 것) 등 각종 제도를 통해 자국 기업의 피인수를 막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국가 기간산업 보호, 첫걸음 뗐다=국회는 지난 20일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이 제출한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갔다.
이날 오후 2시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회의실에서 법안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법안의 골자는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자는 것. 정식명칭은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투자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안’으로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앞서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도 유사한 법안(‘국가안보에 반하는 외국인투자 규제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날 공청회는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심의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재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법안은 공청회 이후 ‘법안 상정→산자위 소위→법사위→본회의’의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법이 된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왕상한 서강대 법학과 교수, 한충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등은 두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외국인 투자가 필수불가결의 요소이지만, 투기자본의 유입으로 시장이 교란되고 일부 기간산업의 경우에는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대표기업들도 위험하다=이승철 전무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30개 기업(금융업 포함) 가운데 2006년말 현재 외국인 지분이 최대주주 지분을 웃도는 기업은 무려 16개사에 달한다. 외국인 지분과 최대주주 지분의 격차는 삼성전자 31.4%, 포스코 59.34%, 국민은행 78.86%, SK㈜ 29.62%, KT&G 43.75%, 삼성화재 35.33%, NHN 46.35% 수준이다.
이미 외국인이 최대주주인 기업도 외환은행, S-Oil 등 2개사다. 이미 SK㈜는 외국계 사모펀드인 소버린에 의해, KT&G는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에 의해 각각 M&A 공격을 당했다. 포스코 역시 M&A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주요 기업들은 방어를 위해 거액을 들여 자사주를 사들여 보유중이다. 자사주 보유금액 상위 10대 기업은 삼성전자(1632만주, 10조2808억원), KT(7179만주, 2조8035억원), S-Oil(3198만주, 2조3860억원), 포스코(710만주, 1조7775억원), SK텔레콤(866만주, 1조6675억원), 현대중공업(1151만주, 9757억원), 현대차(1129만주, 9223억원), KT&G(1556만주, 8526억원), 두산중공업(1865만주, 5986억원), SK㈜(916만주, 5970억원) 등이다. 총 23조원으로 자사주에 묶인 금액만큼 장기투자가 위축되는 셈이다.
◆외국은 어떤가=미국은 지난 1988년 엑슨-플로리오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자국의 기간산업 보호를 직접 겨냥한 대표적 법이다. 미국은 이 법에 따라 안보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외국인 투자를 정부가 직접 조사하고 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이 법 시행 이후 미국은 25건의 자국 기간산업 M&A를 조사해 무려 14건을 무산시켰거나 철회시켰다. 미국은 경영권 방어책도 완비돼 있다.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 500대 기업’ 가운데 90%가 넘는 기업이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책을 도입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철강 석유 교통 통신 등 기간산업 M&A에 대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등은 ‘차등의결권제(대주주 등에게 1주당 2주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를 도입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용이하게 해놓았다. 일본도 2002년 ‘포이즌 필’을 도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5% 공시 룰’이 전부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코스피(KOSPI) 200대 기업’중 조사에 응한 175개 기업의 절반 이상인 50.3%가 적대적 M&A에 무방비 상태라고 답했다. 초다수결의제(이사해임, 정관변경 등의 결의요건을 강화하는 제도), 황금낙하산(피인수 기업의 임원이 비자발적으로 물러나게 될 경우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해 인수비용을 증가시키는 방법) 등 경영권 방어장치를 구축한 기업은 2.2%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