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 국정감사 파행사건과 관련 산단공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이 거론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논란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지식경제위원회의 산단공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최철국 의원의 지적을 받은 이창섭 산단공 서울지역본부장이 해당 국회의원에게 난동을 부리면서 시작됐다.
일명 ‘국감 라이터 투척’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상초유의 사건은 최 의원이 산단공 동남지역본부의 한 직원이 2006년 이후 총 38회에 걸쳐 총 5억4천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촉발됐다. 최 의원은 “횡령이 회계 감사뿐만 아니라, 외부 감사에서도 적발되지 않은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회계를 총괄하는 사무국이 해당 직원과 공모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최 의원은 이어 “횡령 사건의 관리 책음을 면할 수 없는 이 본부장은 8월 서울지역본부장으로 영전했다”며 산단공의 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이 본부장은 1시간 뒤 화장실에 가는 최 의원을 뒤 따라가 화장실 바닥에 라이터를 던지며 폭언과 협박을 했던 것.
수년간 막역한 사이, 횡령 추궁에 ‘격분’
‘국감 라이터 투척’ 사건의 주인공인 이 본부장과 최 의원의 인연은 지난 2004년 김해산업단지를 함께 유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최 의원은 경남 김해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 이곳에 산업단지를 유치하기 위해 뛰어다녔고, 이 과정에서 산단공 동남지역본부장이었던 이 본부장을 알게 됐다.
이 본부장 역시 경남지역 토박이 출신으로 산단공에서 일하며 지역 경제인들과 막역한 관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본부장은 1978년 창원기계공업공단에 입사해 2001년 산단공 울산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03년 12월에는 산단공 동남지역본부장을 역임하다 지난 8월에 서울지역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산단공은 김해시와 함께 2012년까지 경남 김해 주촌면 일대 에 5천200여억원을 투자해 150만여㎡ 규모의 ‘김해일반산업단지’를 건설키로 하고 지난 7월에 기공식을 했다.
이 본부장은 경남지역의 산업단지공단 유치를 위해 함께 일하며 수년간 막역한 사이로 지냈던 최 의원이 정작 국정감사에서 부하직원의 횡령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추궁한 데 격분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 의원과 이 본부장이 경남지역에서 활동하며 서로 아는 사이였는데 국감장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무능력한 사람을 서울지역본부장으로 보낸 것 아니냐’는 질문에 격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의원 측 관계자는 “2~3번쯤 만나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한편, 이 본부장은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최 의원의 질타에) 순간적으로 울분을 참지 못해 그런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모든 것을 접었다”며 “30년간 공직생활을 했는데 본의 아니게 그런 일을 겪고 나니…”라며 말을 흐렸다고 전해진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괴롭다”
그는 “서울지역본부장으로 오기 전 본부장으로 재직했던 경남 창원 동남지역본부의 직원 횡령 사실을 지난 9월7일 처음 알고 난 후, 1개월간 많이 힘들고 괴로웠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상관인 자신이 지휘 책임을 느낀다는 사실을 내부감사자료를 통해서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횡령 사건을 질타했던 최 의원을 잘 아느냐는 질문에 한참 답변을 하지 않다가, “이런 형편이 됐는데 인간적으로 생각해 (언론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괴롭다.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 일로 박봉규 산단공 이사장과 조보훈 부이사장이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고, 산단공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10월9일자로 이 본부장을 파면조치, 사건은 일단락 됐다.
산업단지 관리권 지자체 이양은 지난해 금천구의 금천패션타운 업체들과 산단공의 갈등의 주원인인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이하 산집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다.
금천패션타운 업체들은 산집법은 30년 전 산업단지가 제조업체 위주로 구성됐을 때 공장설립 지원을 위해 만든 법으로 현재 패션산업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자체들 역시 지역경제 및 산업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전국의 산업단지를 천편일률적인 하나의 법으로 관리하는 것은 시대에 어긋나며, 이는 해당 산업을 육성하기 보다는 규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금천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구로구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또한 교통망 부족 및 비즈니스 인프라 취약 등 산업단지 관리권을 둘러싼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다른 산업단지보다 혁신역량은 뛰어나지만 산업지원 기반 시설이 미진하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없이 이어져 왔다.
공장매장 판매시설 놓고 ‘갈등’
늘어난 직원들의 사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공장 시설을 지하로 옮긴 것이 화근이 돼 산단공 측으로부터 ‘입주계약 해지 통보’를 받기도 하고, 공장 매장의 판매시설을 놓고도 갈등이 빈번하다.
이에 서울디지털 2·3단지 입주기업으로 구성된 ‘산업단지 관리권 이양 추진협의회’(이하 추진위)는 단지 전체 입주기업 8천500여곳 가운데 8분의 1에 해당하는 1천232곳이 관리권을 지자체로 넘겨야 한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추진위는 산집법 시행령 개정을 주요 골자로 지난해 ‘산업단지 관리권 이양 촉구 집회’를 시작했다. 이 집회는 올해 9월25일 현재 31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단지에 입주한 많은 업체들은 산단공과 관할 지방자치단체 등 두 곳으로부터 이중관리와 감독을 받아 기업활동에 큰 피해를 겪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산업단지 내 입주기업 활동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산업단지 관리권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할 것과 산집법 시행령의 독소조항을 즉각 개정하는 행정 입법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추진위 주장에 따르면, 산단공은 신규 산업단지 개발업무에 주력하고, 이미 개발이 끝난 산업단지의 관리와 입주기업 지원 등 관리업무는 지방자치단체 또는 입주자 대표협의회로 이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권성호 추진위 위원장은 “산업단지 관리권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면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에 필요한 우수기업을 입주시킬 수 있고, 입주기업은 당면한 애로사항을 즉각 해결할 수 있어 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단지 관리권 지자체 이양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울디지털단지 내 한 업체 대표는 “추진위는 1천232개 입주업체의 의견이 반영됐다고는 하나, 나머지 입주업체들의 의견도 제대로 수렵된 것인지 의문스럽다”면서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지자체에 관리권을 맡길 경우 단체장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공단정책이 일관성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는 기업들에게 오히려 손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지 관리업무 위탁사례 잇따라
또한, 최근 들어 기업지원서비스 강화를 통한 기업환경개선 차원에서 오히려 산업단지 관리 업무를 산단공에 위탁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중앙부터 2곳과 지자체 15곳이 자신들이 관리해야 할 산업단지 관리업무를 산단공에 위탁했으며, 지난해 말에는 부산시가 부산지역 5곳의 산업단지 관리업무를 산단공에게 맡겼다.
이외에도 산단공의 신규 산업단지 공급 부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산업용지 부족으로 입주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이것이 중소기업의 경영 애로를 가중시키는 악영향을 낳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산단공의 올해 산업단지 제공 규모는 123만1676㎡(약 37만7천평) 수준으로, 지난 2006년 226만9430㎡를 기록한 이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우제창 의원은 “같은 기간 산업단지에 입주한 업체는 2만6천768개에서 3만3천137개로 23.8%나 증가해, 산업단지 부족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도권 및 광주 등 대도시 인근 8개 주요 공단의 임대사업자가 급증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주요 8개 공단의 임대사업자가 지난 8월말까지 최근 5년간 5.47배나 급증했다.
공단별 특성과 적정 입주규모 등이 무시된 채, 기존 공장 용지와 공장시설의 소규모 분할을 통한 임대사업자의 수익 극대화를 위한 과밀 입주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신규 산업단지 공급 부족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산단공은 “신규 산업단지 지정 및 조성을 위해 정부 측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단공은 최근 발생한 ‘국감난동 사건’ 및 산적한 논란을 계기로 조직개편은 물론 간부급에서 말단사원급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인적 쇄신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봉규 이사장은 취임 초기 산단공에 변화를 강조하면서 본부직원 10%를 지역현장으로 보내는 현장밀착서비스를 선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