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문래동 철공소 골목이 새로이 거듭났다.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공업단지였던 문래동은 80년대 이후 서비스업의 발달로 쇠퇴기를 맞이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차츰 그 빈자리를 예술가들이 들어와 메우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활발하게 유입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예술’과 ‘기술’이 공존하는 지역적 특색을 지닌 장소로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저렴한 문래동의 임대료와 서울시 어디든 버스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는 편리한 교통은 문래동을 금세 ‘예술창작촌’으로 발전시켰다. 문래동을 관광특화로 만들겠다는 자치구의 계획이 나올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이고 있는 가운데, 이를 우려하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 때 홍대는 예술의 거리로 불리웠지만 지금 ‘홍대’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맛집, 클럽, 카페 등이 연관검색어로 나올 정도의 번화가로 변모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홍대의 임대료는 예술가들을 문래동으로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현재 문래동에는 약 250여명의 예술가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렴한 임대료와 편리한 교통 이외에도 ‘철공소’라는 지역적 특색 또한 예술가들을 모으는 데 한 몫 했다. 문래예술공장의 최정필 차장은 “문래동 철공소의 모든 형태들이 예술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며 “철을 가공하는 소리나 분위기들을 재밌게 느낀 많은 예술인들이 문래동으로 유입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창작 활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철을 깎는 소리, 엔지니어들의 활발한 움직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문래동 일대를 개성있는 아트로 채우기 시작했고, 아로새겨진 예술가들의 감성을 테마로 조성된 카페와 음식점, 조형물 등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신촌, 홍대 등에 질린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으며 이색 명소로 부상하게 됐다.
또한 최근 몇 년 간 문래동 일대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출사 장소로 떠올랐다. 관광객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이곳이 일터인 철공업 종사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초상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늘어났다. 작업 도중 출사를 나온 사진작가의 셔터 소리에 놀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엔지니어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터넷에 사진이 게재되는 등의 불편한 상황이 다수 초래됐다. 철공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초상권을 존중하는 매너있는 촬영문화를 만들어주세요’라는 안내문은 철공업 종사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문래예술공장과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제작한 작품이다.
문래동 지역의 발전은 ‘득보다 실’을 더 많이 불러왔으며 기존 철공소 운영자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관광객이 늘어나 지역구가 활성화될수록 임대료가 상승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 이호준 과장은 “철공소 자리에 식당이 들어서게 되면 임대료를 더욱 높게 받을 수 있으니 철공소 운영자들이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며 문래동 일대 카페 운영자는 작년보다 임대료가 50% 상승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자 철공소 엔지니어들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예술인들의 유입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활동시간이 다르다는 점도 예술인과 엔지니어들의 갈등요인으로 불거지기도 했다. 철공소 엔지니어들의 근로시간인 낮 시간은 예술가들이 휴식을 취하며 영감을 얻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치 동화 ‘개미와 베짱이’처럼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 서로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애착없이 이익을 좆아 마구잡이로 상권을 형성하는 외부 사람들의 유입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가 하나로 형성될 필요가 있었다. 최정필 차장은 “정부에서 아무리 다양한 정책을 시행한다고 해도 그 지역에 애착을 가진 지역사회구성원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기술인과 예술인의 공존을 강조했다.
아직까지 문래동 예술인과 기술인 공동의 협동조합은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화합을 도모하는 커뮤니티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문래동 청년 2세 경영자 소공인과 문래예술촌의 예술인이 자생적으로 결합해 결성한 동아리 'ATM(Art and Technology in Mullae)', 시니어 동아리 'K-Makers', '문래예술인' 3개의 협업단체가 그 예다. 이 중 K-MAKERS는 많게는 30년 이상 금속 관련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모인 동아리다. 이들의 대표적인 협업으로는 ‘팽이야 놀자!’ 팽이 제작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팽이’는 제조기술의 자부심이 담겨있으며 대중과 소공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작년 9월, 영등포 마을장터 ‘달시장’에서는 직접 제작한 팽이를 선보이며 영등포지역주민, 예술가, 사회적기업이 함께 축제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을 통해 엔지니어와 예술인이 서로의 일을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가치인식이 형성됐다. 이런 동아리들은 협동조합의 개념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어 지역사회 구성원들 사이 더 많은 교류가 요구된다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예술인의 감수성과 기술인의 기술력이 융합된다면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호준 과장은 “단순 하청을 받아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제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엔지니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며 “제품 제작에 필요한 디자인 감각, 패키징, 마케팅 등의 세세한 부분에서 예술인들의 아이디어와 아이템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시 재생’의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에 도시를 구성하던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보존하면서 경제 부흥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도시재생은 기존 요소들을 모조리 밀어내고 전혀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중과 다소 친숙하지 않은 철제산업이 문화예술과 공존해 지역적 특색을 구축하고 있는 문래동은 의미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문래동뿐 아니라, 인천, 을지로 등지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고착화돼 버린 ‘산업단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후되고 낙후된 이미지가 이러한 움직임을 계기로 제조업에 대한 이미지 제고, 경쟁력 강화 그리고 더 나아가 청년층의 제조업 취업 기피 현상에도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