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에어컨, 매일 같이 손에서 뗄 수 없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현대 인류의 필수품들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는 ‘전기(Electricity)’다.
지금은 모두가 매우 당연하게 전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제2차 산업혁명으로 맞이한 ‘전기 시대’의 서막은 치열했다. 특히 ‘천재’로 불리는 에디슨과 테슬라, 그리고 웨스팅하우스가 함께 경쟁했다는 사실은 시대를 막론하고 상당한 흥미를 갖게 한다.
“오늘 밤 세상이 바뀔 겁니다. 우리가 단지에 가둬놓은 건 밤하늘에 반짝이던 작은 불빛에 불과했습니다. 단지의 뚜껑을 열고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1882년 9월 4일의 밤, 미국 뉴욕 월가의 캄캄한 거리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뉴욕의 밤거리를 전기의 불빛으로 잠시 낮처럼 바꾼 사람은 ‘전구’하면 떠오르는 발명가이자 사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다.
전기가 차세대 에너지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직류(Direct Current, DC) 시스템 연구에 집중했던 에디슨은 전등, 전력 공급, 발전기 생산, 전선 생산 회사 등을 잇달아 설립해 전기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 사를 세워 전기 사업을 장악했다.
그러나 전기를 송전하는 방식은 에디슨이 고집한 직류뿐만 아니라 교류(Alternating Current, AC) 송전 방식도 있다. 직류는 항상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전기를, 교류는 전기의 방향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전기를 말한다.
송전 방식을 두고 에디슨은 기업 ‘웨스팅하우스’의 창업주인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와 경쟁했다. 그 과정에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으며 빛의 전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영화 ‘커런트 워(Current War)’(감독 알폰소 고메즈-레존, 2019)는 에디슨(베네딕트 컴버배치), 웨스팅하우스(마이클 섀넌), 테슬라(니콜라스 홀트) 등 천재들이 벌인 수년간의 전류 전쟁을 속도감 있게 재현했다.
발명가이자 사업가로 각종 특허와 기술을 보유한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가 1886년 전기회사를 설립해 교류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전기 보급 시장에 진출하자 강한 압박감을 받는다.
직류를 사용하려면 소비지역과 가까운 곳에 발전소를 설치해야만 했다. 따라서 더 넓고, 더 먼 지역에 직류로 전기를 전송하려면 더 많은 발전소가 필요했고, 값비쌌던 굵은 구리선을 이용해야 해서 비용 부담이 컸다.
반면, 고전압으로 송전 후 소비지역에서 변압을 하면 되는 교류 송전 방식은 직류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멀리 전기를 보낼 수 있고, 특히 비용이 훨씬 저렴했다. 교류의 장점을 알게 된 사업가들은 웨스팅하우스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끝까지 직류를 신봉했던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를 더욱 몰아친다. 지금이라면 동물보호단체의 강력한 항의를 받을 잔인한 방법으로 교류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쇼를 강행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말 한 필이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동물들이 전류 실험이라는 명분으로 생명을 잃었다. 또한 에디슨은 사형수에게 사용하는 사형의자를 만드는데 협조하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약한 전압에서 감전시 직류보다 교류가 사고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고압에서 감전이 되면 직류나 교류나 모두 인체에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에디슨은 직류는 안전하고, 교류가 위험한 전기라고 지속적으로 공격한다. 이에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했지만, 교류의 효율성을 주장하다 갈라선 테슬라와 손을 잡는다. 테슬라가 고안한 전동기는 교류 전력으로도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교류의 단점을 채웠다. 테슬라는 다른 교류 관련 장치에 대한 특허들도 웨스팅하우스에 판매했다.
결국, 승리의 여신은 웨스팅하우스-테슬라의 손을 들어줬다.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 웨스팅하우스가 전기 시설 독점권을 가져가면서 교류가 전기 시스템의 표준이 된 것이다.
이후 에디슨의 회사는 ‘톰슨-휴스턴 사’와 통합돼 ‘제너럴 일렉트릭(GE)’으로 변모했고, 에디슨은 회사에서 물러난다. 에디슨이 빠진 GE는 교류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해 1895년 나이아가라 폭포에 수력발전소를 구축한다. 웨스팅하우스는 건설 공사를, GE는 전기 공급에 필요한 전선 제작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에디슨의 직류로 시작했던 ‘전기의 시대’는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가 합작한 교류의 시대로 변화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현대 전기의 대부분은 교류 송전 방식으로 운반한다.
그러나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력 반도체 기술이 발달해 직류 변압이 손쉬워졌다. 이에 교류의 단점인 좋지 않은 송전 효율, 복잡한 전력망 등을 직류로 보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알려지면서 직류 사업에 대한 실증이 국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직류의 장점을 꿰뚫어본 에디슨의 고집이 뒤늦게 빛을 발하는 셈이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말처럼, 에디슨의 직류도,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도 현대에는 모두 필요하다. 당시의 전류 전쟁은 한쪽의 승리로 끝났지만, 다른 쪽이 남긴 연구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인류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천재들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