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일보]
정부의 해외직구 규제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16일 진행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은, 해외직구 급증으로 위해제품 반입·세관 직원 업무 부담 증가를 배경으로 한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를 비롯한 중국발 직구 물량이 늘면서 통관 직원들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고, 특히 평택항 세관의 경우 물품 검사에 5초 이상을 쓸 수 없어 위해물품뿐만 아니라 마약류 검사까지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심각한 위해가 우려되는 80개 품목에 대해 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 금지(생활화학제품 품목은 미신고·미승인 제품) ▲빅데이터 인공지능 모니터링 등을 통한 가품 차단 및 개인정보 보호 강화 ▲소비자 피해 예방 및 구제 강화 ▲기업 경쟁력 제고 ▲면세 및 통관 시스템 개선 등의 방안을 계획했다.

그렇다면, 해외직구는 어떤 상황에서 이용될까? 우선은, ‘가격비교 소비’다. 예를 들어, 쿠팡 등 국내 유통플랫폼에서 3만 원에 판매하고 있는 중국 제조 제품을 중국 유통플랫폼을 이용하면 1만 원에 구매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내 제조사의 제품을 내수시장보다 해외시장에서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또, ‘국내 미정발 제품’ 구매를 위해서다. 한국 내수시장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 해외제조사가 KC 인증을 비롯한 정식발매 과정을 손해라고 판단한 경우, 국내 소비자는 해외직구를 통해 이 제조사의 제품을 구매해 왔다.
‘국내 유통구조 불신’의 이유도 있다. 일부 품목의 제품들이 해외 판매가보다 국내 판매가가 현저하게 높은 경우다. 판매자들의 담합이 의심될 정도로 가격대도 비슷하다. PC부품, 에어소프트건 등의 품목이 해당된다. 이 때 소비자들은 해외직구라는 선택지를 활용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해외직구 규제 정책에 대해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놨다. ‘해외직구’라는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주된 반응이었다.
특히, 정책 브리핑 당시 국무조정실 이정원 국무2차장이 “자가 사용을 위한 직구를 금지하겠다”라고 밝힌 것이 논란을 가중시켰다.
정부는 19일 추가 브리핑을 열고 “80개 위해 품목의 해외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 강조된 것 같다”라고 진화를 시도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품목 소관 부처가 위해성 검사를 집중 실시한 후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의 반입을 차단한 것이 계획이라고 전한 것이다.
16일 브리핑 이후 붉어진 ‘KC 인증 민영화 시도와 인증기관에 특혜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관해서도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KC 인증은 현재도 민간 인증기관이 시행하고 있으며, 정부의 규제개선 과제는 KC 인증기관을 비영리기관에서 영리기관으로 확대해 경쟁 촉진을 통해 인증 기간 단축과 서비스 개선 등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이번 해외직구 규제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해명에도 국민들의 불신은 지속되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22일 ‘국내소비자 이권을 침해하는 해외직구 규제 방안 철폐 요청에 관한 청원’이 제기됐다. 청원인은 소비자 권익 침해, 물가 인상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이 청원은 23일 6만 2천401명의 동의를 얻어 정무위원회로 소관됐다.

‘직구규제반대소비자회(이하 소비자회)’는 25일 광화문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직구 규제 반대 1차 집회’를 개최했다.
소비자회는 보도자료에서 ‘정부는 16일 직구 규제 정책 최초 브리핑에서 개인 사용 목적의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언급했지만, 19일 추가 발표에서는 해외직구 전면 차단은 물리적·법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런 방안을 검토해 본 적도 없다고 말을 바꿨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20일에는 또다시 6월부터 규제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말이 나왔다’라며 ‘국민도, 기업도, 심지어 업무 최일선에 있는 관세청도 정확한 정책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소비자회는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라며 ‘현재 해외 물품 수입이 필요한 중소기업은 존폐의 기로에 놓였으며, 학계에서도 후속 연구가 불가능해졌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라고 의견을 내놨다.
집회에서 소비자회는 ▲KC 인증을 받지 않는 제품 수입 금지 정책 전면 철회 ▲직구 제한 등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규제를 재추진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약속 ▲국산 제품을 국내 유통망보다 해외에서 재수입할 때 가격이 낮은, 기형적인 유통구조 개선 ▲‘상호인정협정’ 확대 ▲국정 혼란 재발 방지를 정부에 요구했다. ‘응답은 국민 모두가 오해 없이 해석할 수 있는 명확한 언어로 표현’해달라는 요청도 눈에 띄었다.
국회에도 요구사항을 던졌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입법부가 직구 규제 정책의 진행 과정, ‘KC 인증 민간이양 정경유착설’을 비롯해 국민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여러 의혹들을 명확히 밝혀달라는 것이다.
소비자회는 논어 속 공자의 ‘식량보다 신뢰가 우선’이라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국민과 믿음이 없는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 정부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언급했다.
종합해 보면, 정부는 중국발 해외직구가 급증하며 안전 이슈가 부상하는 가운데 국민 보호를 위해 안전을 위협하는 해외직구 제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소비자인 국민들은 기본권 제한 우려가 있는 정책을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모호한 표현과 말 바꾸기가 사회의 혼선을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유해성 검사와 정보제공을 활발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선택권은 결국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직구 규제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와 우려는 무거워지고 있다. 국민 보호라는 정책의 취지는 ‘특정 집단 수혜’라는 오해로 읽히고 있다. 정부의 국민 의견 수렴을 통한 투명한 정책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