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 물량은 원전 30기에 달하는 30GW(기가와트)지만, 실제 상업 운전 중인 곳은 1% 수준인 0.13GW에 불과하다.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주민 반발에 가로막혀 '서류상 발전소'만 양산된 탓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3월 시행될 '해상풍력특별법'을 계기로 민간 주도의 난개발 방식을 끝내고, 정부가 입지를 선정하는 '계획입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7차 한-독 에너지데이’에서는 이 같은 '주민 수용성'과 '산업 생태계 위기'를 타개할 해법이 집중 논의됐다. 참석자들은 "해상풍력은 단순한 에너지원 확보가 아니라, 지역 사회와의 공존과 치밀한 공급망 전략이 필수적인 복합 프로젝트"라고 정의했다.
서택원 RWE Korea 상무는 현장에서 겪은 수용성의 본질을 ‘이웃됨(Neighborliness)’으로 요약했다. 서 상무는 “현재 어민들에게 민간 개발사는 바다를 빼앗는 ‘침입자’로 인식된다”며 “수용성을 높이는 건 결국 30년 이상 함께할 이웃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라고 짚었다.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는 ‘공간 점유 경쟁’으로 지목했다. 어업, 군사, 해상 운송 등 기존 바다 이용자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독일처럼 정부가 사전에 구획을 정해주는 ‘계획입지’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어 “현재 한국의 이익 공유 요구는 기준 없는 체리피킹(Cherry-picking)식이라 갈등만 키운다”며, “입찰 시 고정 수익을 보장하는 등 예측 가능한 법적 이익 공유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KEI) 선임연구위원은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했다. 조 위원은 “계획이 다 확정된 뒤 여는 설명회는 통보에 불과하다”고 꼬집으며 “타당성 조사 단계부터 어민과 소통해 ‘안 되는 지역’을 먼저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시행될 특별법이 초기 단계 민관협의체를 의무화한 점을 언급하며, 절차적 정당성 확보의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독일 프라운호퍼 시스템·혁신연구소의 바바라 브라잇쇼프 연구원은 ‘재정적 참여’가 수용성을 높이는 강력한 도구임을 데이터를 통해 입증했다.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전기요금 인상을 감내하는 수동적 동의보다, 시민이 직접 프로젝트의 지분을 갖거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등 '투자자'가 되었을 때 사업에 대한 지지도가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정적 참여는 부족한 자본을 확충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을 우군으로 만드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산업계에서는 고금리와 인프라 부족이라는 ‘이중고(二重苦)’를 호소했다. 최덕환 한국풍력산업협회 실장은 “한국 시장은 인허가 리스크를 넘더라도, 금융 조달 난항과 공급망 부족이라는 새로운 건설 단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최 실장은 “30GW에 달하는 발전사업 허가 물량이 대기 중이지만, 이를 설치할 전용 선박과 항만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라며 “고금리와 원자재가 상승이 2026년까지 시장을 압박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는 PPA(전력구매계약) 시장 활성화, 항만 등 배후 단지 확충, 글로벌 기업과의 전략적 협력을 주문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민간에만 떠넘겼던 리스크를 정부가 나눠 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부 주도의 계획입지와 투명한 거버넌스 구축만이 1%에 멈춰 선 해상풍력 시계를 다시 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