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초대형 M&A, 차기 정권으로
시장 논리 벗어나 정치 논리화… HSBC의 외환은행 인수도 예측불허
금융감독당국의 수장이 법원 판결 전에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하면서 HSBC의 외환은행 인수 작업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 들고 있다.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 우리금융 지주에 이어 외환은행 매각 마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5조원대 이상의 초대형 인수·합병(M&A) 건들이 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산업계 및 금융업계에 따르면 외환은행을 5조9천400억원에 인수키로 한 HSBC는 10일부터 정밀실사에 착수, 본격적인 인수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실사작업을 물리적으로 저지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실사는 무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이 "법적인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법원 판결전 승인 불가 입장을 재차 확인함에 따라 연내 인수가 완료될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법원 판결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나올 것으로 보여 2년째 끌어 온 외환은행 매각 작업의 완료는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이며 법정 공방이 장기화할 경우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금융도 내년 3월말로 예정된 민영화 일정을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예금보험공사의 지분 5% 매각으로 23%로 줄어든 소수지분은 내년 3월말까지 매각할 수 있겠지만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지배지분(50%+1주)의 매각을 위해서는 매각 시한의 재연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산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작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후 16개월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 등 일부 채권단이 옛사주의 부실 책임 문제 선해결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매각 주관사 선정 등 매각 논의가 중단됐고 외환은행 건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예금보험공사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지만 최종 판결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현대건설 매각도 기약없이 연기될 처지에 놓였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난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 올해 말 채권단 지분 매각제한(Lock-up)을 앞두고 있지만 새 주인을 찾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이 최근 크레디트 스위스(CS)를 자문사로 선정하고 조기 경영안정화를 위한 지배구조개선 방안 마련과 투자자 접촉할 예정이지만 기간 산업인 반도체 기업을 해외에 넘겨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강해 적합한 인수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하반기 매각 착수를 계획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아직 매각주관사 선정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매각 완료 시기가 내년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몸값이 6조원을 훌쩍 넘어선 데다 지난 4월부터 시행된 산업기술유출방지법으로 외국 기업의 인수 참여가 체한될 것으로 보여 매각 완료에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우조선해양은 2001년8월 워크아웃을 졸업하고도 6년 째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의 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초대형 M&A 건이 차기 정권 출범 이후인 내년으로 넘어가면서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소유의 국책은행이 관여하고 있거나 법정 공방의 영향을 받는 매각 건들은 여론이나 정치권의 입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오랫동안 주인 없는 회사로 운영될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고 대기업의 M&A 지연으로 국가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M&A 시장 관계자는 "2003년 외환은행 헐값매각 논란 이후 부담을 느낀 정부나 금융업계가 책임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려는 기류도 대형 M&A의 지연에 일조하는 것 같다"며 "현재 진행중이거나 계획중인 M&A가 차기 정권의 의지나 여론에 따라 180도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어 인수를 준비하던 기업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