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된 쌀 조기 관세화, 아직 갈 길이 멀다
'쌀 특별분과위원회' 설치, 정부와의 조율작업에 많은 진통 예상돼
쌀 조기 관세화(시장 개방) 여부를 결정할 농민단체 중심의 논의 기구가 최근 첫 모임을 갖고 출범했으나 이는 쌀 조기 관세화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어서 실제 조기 관세화까지는 앞으로 많은 난항이 기다릴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농림수산식품부와 농민단체들에 따르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쌀전업농중앙연합회,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등 농민단체들은 최근 민관 합동기구인 농어업선진화위원회 아래에 '쌀 특별분과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이는 농민단체가 주축이 돼 쌀 조기 관세화의 득실을 따지고 실행 여부를 결정할 기구로, 정부는 쌀 문제의 민감성을 감안해 농민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며 쌀 특별분과위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불거질 정부와 농민단체, 시민사회 간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계산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첫 모임(13일)에서는 장기원 쌀전업농중앙연합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운영 방향 등을 논의했으며, 24일에는 조기 관세화의 찬반 논리를 듣는 2차 회의가 열린다.
한농연 관계자는 "이제 막 논의를 시작한 단계"라며 "앞으로 본격적으로 조기 관세화가 필요한지, 한다면 시점은 언제가 적당한지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단체들은 이 기구와 별도로 '쌀산업 종합발전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농민단체가 중심이 되고 소비자단체와 학계도 참여해 중장기적인 쌀산업발전 대책을 만들어 여기서 나온 발전안을 쌀 특별분과위를 통해 정부에 요구한다는 계산이다.
쌀 조기 관세화란 2014년까지 유예돼 있는 쌀 관세화 시점을 앞당기자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2014년까지 관세화를 미루면 매년 쌀 의무수입량인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이 늘어나 부담이 커질 수 있어 국제 쌀값이 급등한 지금 앞당겨 시장을 열면 MMA 물량은 고정되고 국산 쌀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수입쌀은 수입되지 않아 국가적으로 이익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농민단체들 대부분은 쌀 조기 관세화의 타당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조기 관세화의 후유증에 대해서는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국제 쌀 가격이 뚝 떨어지면서 수입쌀이 밀려들어올 수도 있고, 지금은 개발도상국인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내 위상이 선진국으로 바뀌어 관세 감축 폭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농연 관계자는 "무엇보다 쌀 시장 조기 개방이 WTO 체제에서 한국의 개도국 지위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검증이 선행돼야한다"며 "여기에 시장 개방에 따른 농가 대책도 마련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단체들이 쌀 조기 관세화에 대한 합의를 이룬다 해도 그 뒤에 해결할 일이 산적해 있어 이르면 당장 내년부터 조기 관세화를 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일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가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미 2014년 이후 쌀 관세화를 하기로 한 조약이 국회를 통과한 바 있어 조기 관세화는 별도의 비준동의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국회를 거치게 되면 이 과정에서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하면서 처리가 지연될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쌀 조기 관세화가 결정되면 이를 WTO 회원국들에 통보하고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우리보다 앞서 쌀 시장을 조기 개방한 일본이나 대만도 WTO 회원국 설득에 수년의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년부터 조기 관세화가 이뤄지면 더 바람직하겠지만 정부가 서두르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영복 기자 asura@kid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