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국민학교나 중학교를 갓 졸업한 단말머리 소녀들이 낯선 서울에서 첫 객지생활을 시작하던 곳, 작업복 차림의 여공들이 밟아대던 재봉틀 소리가 밤늦도록 울려 퍼지던 곳, 벌집 같은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곳, 아침마다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 앞에 줄이 길게 서 있던 곳…. 1960~70년대 구로공단의 모습이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1964년 출발한 구로공단은 섬유와 가발, 봉제 등 경공업산업으로 출발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후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구로동은 경부선과 경인선이 지나며 수도권 전철과 경인고속도로에서 모두 1km 이내에 자리 잡고 있어, 원부자재 반입과 수출화물 선적에 매우 유리했다. 또 종업원들의 출퇴근도 편리해 이곳에 대형 공단이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이 전무했기 때문에 재일동포 기업들을 우선 유치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생산기술과 원자재를 들여와 제품을 생산, 수출하는 보세가공업이 주류를 이뤘다. 이곳 근로자의 절반 이상은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상경한 10대 중후반의 여성들이었다.
이들 덕분에 구로는 1969년 국가 전체 수출액의 10%에 달하는 핵심국가공단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구로공단의 대표 업종은 섬유와 봉제. 이 부문은 10년 넘게 구로공단 수출액의 평균 44%를 차지하며 호황을 누렸다.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섬유, 가발 등의 경공업이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대신 전기전자업종이 부상, 1985년부터는 구로공단 수출액의 46%를 차지하며 수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못한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의 저가제품이 시장을 잠식, 성장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인쇄 분야의 수요증가에 힘입어 종이인쇄업이 구로공단의 주요 업종으로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구로는 IT 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한다. 2000년대 초반, IT거품이 꺼지면서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에 몰려 있던 IT 업체들이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값싼 구로 쪽으로 이전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구로는 디지털밸리로 거듭났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구로 지역을 지식기반산업 집적지구로 지정하면서 힘을 실어주었다. 공단을 운영·관리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이를 계기로 지식기반산업, 정보통신업, 제조업을 적극 유치하고, 이종(異種) 산업 간의 융합을 촉진, 서울디지털단지를 지식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특히 창업보육센터를 설치, 지식산업의 창업 여건을 개선하고 경영컨설팅업을 신규로 유치해 지식 관련 기업의 집적을 촉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기업부설 연구소와 대학원 분원, 디자인 전문 교육기관 등의 유치를 확대하고 이를 지역산업과 연계, 서울디지털단지에 IT 및 패션과 관련한 산·학·연 클러스터를 형성할 계획이다.
안영건기자 ayk2876@kid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