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골프는 정·재계 인사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정 계층을 위한 스포츠였다. 그렇다면 최고 권력자인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과 골프의 상관 관계는 어떠했을까?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골프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으로 인해 국민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와 취미, 두 마리 토끼를 잡다
-골프의 흥망성쇠를 가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골프장에서 외교를 논했고, 정치 각료들은 물론 군대항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등 골프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70년부터 3년간 무려 10개의 골프장을 개장한 것을 비롯해 재임 기간 동안 20여 개에 달하는 골프장을 개장하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정규 규모 골프장인 군자리 코스에 어린이 대공원을 짓기도 했는데, 이는 골프 당시 항상 경호원을 대동할 정도로 안전에 민감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자리 코스 인근이 개발되면서 안전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골프로 해소하기도 했다.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고양 지역의 골프장에서 9홀 라운딩을 마치고 측근들과 술을 마시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항상 클럽을 어깨에 메고 걸어 다니며 푸른 잔디 위를 걷는 골프의 남다른 재미에 탄복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대변하는 용어 중 ‘1퍼팅 OK’라는 말이 있는데, 그린에 올라가면 딱 한 번만 퍼팅을 하고 끝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국가의 통치자가 고개를 숙이고 홀컵에 공을 넣으려는 모습이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설이 전해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골프에 대한 애정은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골프광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를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구현됐고 정부 차원에서 골프를 육성하며 권력의 테두리 안에서 폐쇄적이기는 했지만 정권 초기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골프계를 끝내 중흥기로 이끈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겼다.
-서민적 이미지와 골프에 대한 사랑 ...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골프는 왠지 언밸런스하다는 느낌을 준다. 워낙 서민적인 이미지가 강한 대통령인데다가 골프가 가진 귀족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이다. 먼저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권양숙 여사에게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100타 내외 수준이라고 알려진 권양숙 여사가 실제로는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라 하니 꽤 좋은 스승을 모신 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골프 책과 비디오를 보면서 근육의 각도까지 연구할 정도로 집요하게 골프에 빠져들었고, 첫 라운딩 후 참 재미있는 운동이라며 골프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골프의 재미에 푹 빠진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이 되기까지 골프 덕을 톡톡히 본다. 바로 이후 핵심 측근이 된 이해찬 의원과의 골프장 회동을 통해 민주당 경선 승리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골프 인구가 증가하면서 골프장이 부족해 해외 골프 관광으로 인한 외화 손실을 안타까워하며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퍼블릭 코스의 필요성을 인식해 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자체나 국가 소유 유휴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친환경적인 공법으로 대중 골프장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대통령이 된 후 이 주장을 현실적인 정책으로 구현했고, 그 결과 노무현 정부 말 골프장 수가 270개 이상으로 그 개수로만 세계 16위까지 올랐다. 외적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듯 하지만 골프의 대중화라는 궁극적인 과제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골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앞서는 정책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야기했고, 몇몇 골프장 건설 과정에서 환경단체와 부딪히며 친환경적 요소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애매모호한 결과를 남기고 말았다.
*골프의 대중화를 꿈꾸다
-대중화와 사회적 이슈의 딜레마에 빠지다 ...노태우 전 대통령
특히 누구든 조건만 갖추면 일정 세금을 내고 골프장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면서 골프의 대중화를 이끌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전국에 골프장 건설 붐을 일으키며 환경 및 각종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 골프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이런 분위기를 모면하고자 골프의 스포츠적인 부흥은 외면한 채 6공화국은 스스로 스포츠 시설로 인가한 골프장을 사치스러운 곳으로 규정하며 각종 중과세를 묶어 규제 사업으로 분류하는 등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규 골프장이 속속 건설되며 골프인구가 급증, 6공화국 5년 동안 골프 인구가 3배 이상 증가해 150만 명에 육박하는 대중화의 첫 포문을 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노태우 전 대통령 본인 역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서너 달에 한번 정도 필드에 나갔고 골프 핸디캡은 18~20 정도였다고 한다. 필드에 나가는 대신 청와대 골프 연습장을 무척 애용하며 조용히 골프를 즐긴 스타일로, 청남대 골프장에 가면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라운딩을 할 정도로 골프를 즐기는 대통령이었다.
-골프업계의 쇄신을 말하다...이명박 대통령
현 이명박 대통령은 골프보다 테니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골프는 운동이 되지 않아 흥미롭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구력은 꽤 되지만 최근에는 라운딩을 거의 하지 않으며 골프 실력은 보기 플레이 정도라고 한다.
정작 본인은 필요할 때 외에 골프를 즐기지 않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골프 대중화에 대한 생각은 확고해 보인다. 대통령 후보일 때부터 체육청을 신설하고 체육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실제로 정부는 세금을 줄이고 골프업계도 함께 협력해 골프비용을 낮춰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공직자들의 골프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골프를 쳐도 된다, 안 된다를 말하기 보다는 공직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율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그 소신이 실제로 구현되어 골프의 대중화로 이어질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스포츠로써의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한 채 숱한 오해로 영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골프. 이제 정치적인 목적에서 보다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 귀족 스포츠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 속으로 걸어들어 갈 때다. 한 때 정치적 수단으로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역할까지 담당 했던 골프가 향후 대통령을 만나 대중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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