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이차전지나 태양전지, 연료전지 등 각종 에너지 변환 디바이스들과 전자 회로, 바이오센서 등 폭넓은 분야에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전기 분해, 전기 도금과 같은 전기화학 기반 요소 기술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전기화학적 시스템이 새로이 출현한다면 이는 곧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원천 기반 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제시하는 새로운 전기화학 플랫폼이 최근 순수 국내 연구진에 의해 제시됐다. 서울대학교 화학부 정택동 교수팀이 주도한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글로벌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인 “멀티스케일 에너지 시스템 연구단”(단장 최만수 교수) 지원으로 수행됐고 같은 대학 전기공학부 박영준 교수팀이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영국에서 발간하는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지 11월호(11월 12일자 온라인, DOI: 10.1038/ncomms3766)에 게재됐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모래와 유리의 성분이자 절연체인 산화실리콘(SiO2) 박막을 통해서도 특정 조건에서는 충분히 전류가 흐르며 그것을 제어하면 절연체 박막 상의 다양한 전기화학적 반응들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산화실리콘과 같은 산화물은 절연체로서 그동안 전극으로는 사용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산화막 안에서 전자 대신 양성자가 투과할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해 산화막으로 덮인 전극을 산성 수용액 전해질에 담근 후 전압을 가하자, 용액에서 산화막 안으로 이동해 들어간 수소 이온의 환원을 통해 전류가 흐름을 발견했다.
즉, 절연막인 산화막을 사이에 두고 수소를 매개체로 해 전기화학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됨으로써 터널링 현상에 주로 의존하던 종래의 절연막 물성에 개념상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물리적 현상을 화학적으로 이해하고 응용했다는 측면에서 반도체 물리와 전기화학의 융합 연구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지구상에 흔히 존재하는 산화 실리콘 표면에서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환원시킬 수 있고, 절연체 위에 촉매 물질을 자유롭게 전기 도금 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였다. 아울러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과 같이 산화물을 전자 소재의 전극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 또는 산화물 촉매를 이용해야 하는 환경/에너지 산업의 경우에 이 원리가 응용될 수 있다.
이 연구 결과를 계기로 환경/에너지/전자산업/바이오센서 등 광범위한 분야에 다양한 원천 기술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생활 속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절연체인 산화막을 전자소재 및 촉매 등에 값싸게 응용, 적용하려는 연구 개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