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를 위해서는 지방세포를 공략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치료제를 지방세포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 바이러스성 유전자 전달체를 통해 뇌의 비만 중추를 조절하는 유전자 치료가 연구되고 있으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기 어려우며 면역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기존에 개발된 비만 치료 약물은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되고 있어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고전하고 있다.
약물전달시스템을 25년 이상 연구해 온 김용희 한양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는 최근 심근경색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양이온성 펩타이드 기반 단백질 전달체를 연구하게 됐다.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 단백질이나 항체, 유전자 등은 분자의 크기가 커서 세포 내로 직접 이동하지 못한다. 이들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 작용하기 위해서는 전달체가 필요한 데, 양이온성 펩타이드를 기반으로 한 전달 시스템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단백질 전달체 개발 성과를 응용해 유전자 전달체를 개발하기로 한 김용희 교수는 비만 치료를 목표로 정했다. 평소 당뇨와 암, 심혈관질환 등 만성 질환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러한 만성질환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인 비만에 주목한 것이다. 비만은 심혈관계 질환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고 세상에서 가장 환자 수가 많은 질환이기도 하다. 해마다 환자가 늘어 서방 국가에서는 비만을 국가적 재난으로까지 여기고 있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았다. 김용희 교수는 약물로 치료가 어렵다면 유전자를 이용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연구 과정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비만 동물 모델이 만들어지기까지 2~3개월이 걸렸고 체중 감소 및 인슐린 저항성 개선 효과 검증까지 또 다시 2개월이 필요했다. 하나의 실험 결과를 얻기까지 꼬박 4개월에서 5개월이 소요되는 과정이었다. ‘연구’를 뜻하는 영어 단어가 반복해서 계속 찾는다는 의미에서‘리서치 (Re-search)’이긴 하지만 연구비 부족과 실험결과에 대한 기다림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세포 수준의 실험에서 이미 충분히 가능성을 검증했고 개발한 유전자전달 시스템의 효능을 확신했기 때문에 연구를 끝까지 추진할 수 있었다.
김 교수가 개발한 유전자전달 시스템은 상용화까지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산업체와 공동 개발을 위한 제품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국제특허를 준비 중이며 대(大)동물 실험 등 후속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본 성과에 대한 제약 업계에서의 관심이 커서 국내 제약회사는 물론 글로벌 제약 회사들과의 협업도 기대하고 있다.
한편 김용희 교수는 지방제거 유전자를 지방세포에만 전달하는 비바이러스성 유전자 전달체와 이를 이용한 비만 치료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10월 과학기술자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약물전달시스템…융단 폭격에서 정밀 타격으로
김용희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요즘 과학기술인으로서 또 한 번 더없는 인생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고 말한다. 청년 시절 낯선 미국 땅에 건너가 고군분투 끝에 마침내 박사모를 썼을 때 느꼈던 생생한 희열과 열정이 25년여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덧 중견연구자가 된 그에게 다시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지방세포만 제거하는 유전자 전달시스템을 개발해 국내외의 큰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비만치료제들이 지방세포뿐만 아니라 주변의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융단폭격 방식이었다면, 김 교수팀이 개발한 기술은 목표가 되는 지방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해 부작용 없이 비만을 치료하도록 하는 신개념의‘원점 타격형’치료법이다.
이 연구결과로 김 교수는 2014년 12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올해 다시 이달의 과학기술자 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는“다른 우수 연구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달의 과학기술자 상을 받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관련 분야에서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고 기술 상용화를 향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게 됐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세 스승을 통해 배운 연구자의 길
김 교수가 평생의 연구주제로 삼고 있는 신약개발과 약물전달시스템 연구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는 그의 인생 좌우명과도 닮아 있다.
한국이 사상 첫 국제대회인 아시안게임 개최로 들떠 있던 1986년, 김 교수는 지금은 고인이 된 스승 유병설 서울대 약학대학장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가 찾은 유타대(University of Utah)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특히 명성이 높은 학교이다.
김 교수가 박사과정을 시작한 당시 유타대는 김성완 석좌교수와 윌리엄 히구치 교수를 중심으로 약물전달시스템의 이론과 기술이 정립돼 가던 시기였다.‘약물 전달시스템’은 생명공학의 발달을 통해 속속 밝혀지는 세포 내 단백질-유전자 네트워크 정보를 이용하는 치료법이다. 병의 원인이 되는 곳에 선별적으로 필요한 약물을 전달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능과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
창시자 격인 두 교수의 지도 아래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약물전달시스템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바이오의약과 약물전달시스템을 접목하는 연구에 매진해 왔다. 특히 차세대 성장 동력 사업으로 추진된 바이오신약장기사업(2004~2011)의 지원 아래 온도 감응성 하이드로젤을 이용한 약물·유전자 전달 연구, 유전자 전달용 환원성 고분자 연구 등 세계적으로 앞선 기술을 개발했고 마침내 세계 최초의 비만세포 표적 유전자 전달체 개발에 이르게 됐다.
이 새로운 기술은 기존 해외 연구자들이 전달 효율은 높지만 체내에서 여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 전달체를 개발해 온 것과 달리, 안전한 대신 전달 효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던 비바이러스성 전달체의 효율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접근방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창의적이다.
김용희 교수팀의 연구는 비만 뿐만 아니라 고지질,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등 비만과 연계된 대사증후군의 치료·억제에도 적용될 수 있어 상용화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 교수는 바이오의약이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후학들의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제자들의 국제화이다. 실험실 내에서 모두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려는 노력이나 매년 외국 학회에 연구원들을 보내 견문을 넓히도록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눈이 트이지 않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매일 보던 것만 생각하게 되니까요. 밖으로 나가야 새로운 문화를 만날 수 있고, 그로부터 비로소 진화된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부터 인생의 목표를 ‘글로벌 과학자’로 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연구의 길은 ‘research’라는 단어처럼 찾고 또 찾는 문제해결의 과정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으로 초지일관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