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 과거 현재 미래~”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이 장난을 칠 때면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가 야속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보니, 김현재 교수는 결국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그대로 ‘어린 묘목을 가꾸어(栽) 세상에 드러내는(顯)’ 삶을 살고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미개척 분야에서 이제 아이폰, 갤럭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핵심이 된 저온폴리실리콘(LTPS) 기술개발 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이 계속해서 세계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도록 창의력 넘치는 후학을 길러내는 일도 그러하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해 주신 할아버지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김현재 교수는 저온폴리실리콘 기술 연구를 통해 현재 스마트폰에 널리 사용되는 고해상도 액정표시장치(LCD) 및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의 양산 및 상용화 기틀을 마련, 한국이 디스플레이 강국으로 성장하는데 상당 부분 일조했다.
김 교수는 InGaZnO*라는 반도체 물질을 용액 공정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기존의 진공 공정으로 제작된 기술에 비해 제작공정을 단순화하고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핵심기술을 확보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금속산화물 반도체 물질 중 하나로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여러 가지 제품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교수는 이러한 디스플레이 분야의 폭넓은 연구를 바탕으로 최근 3년간 SCI 저널에 53편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외를 아울러 총 43건의 특허 등록을 진행하는 등 디스플레이 분야 원천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수상을 기대 했는지
▲“뛰어난 업적과 명성을 가지고 계신 연구자 분들이 많으셔서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 와중에 이렇게 상을 받게 되니 영광스럽고 놀랍기도 하네요. 저를 비롯해 지금 같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노력이 함께 인정받게 돼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 5년 연속 연세대학교 우수연구 교수상과 지난해 머크 어워드, 그리고 이달의 과학기술자상까지 수상이 계속되고 있다. 오랜 연구가 대내외에서 큰 인정을 받고 있는데
▲“매우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상을 받는 기쁨도 참 크지만, 받고 나서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간 세계 정상을 지켰던 한국의 디스플레이 분야는 지금 중국의 추격 속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과 개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 산업이 더 심도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연구자로서 뿐만 아니라 국내외 디스플레이학회 활동, 기술사업화 연구와 학교 수업까지 여러 가지 대내외활동으로 분주한 것으로 안다. 건강 내지 컨디션 관리를 위한 방법이 있다면?
▲“연구와 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려면 무엇보다 건강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가능하면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식사도 가급적 규칙적으로 하려고 하고요. 그리고 대내외 활동과 학계를 통해서 많은 연구자분들이나 학생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를 하는 것이 몸은 힘들어도 오히려 정신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 1996년 당시로서는 생소한 저온폴리실리콘(LTPS) 기술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관련 제품을 상용화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앞선 연구자도 많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두려움은 없었나
▲“당시에는 저온폴리실리콘(LTPS) 기술이 지금처럼 휴대폰의 핵심기술로 상용화되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기발광다이오드(OLED)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중요한 기술이 될 줄도 몰랐고요. 1996년에 삼성전자에서 3명으로 팀을 꾸려 기술개발을 시작했지만 워낙에 미개척 분야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없던 기술을 개척한다는 도전의지로 버텼던 때지요. 또 학교에서 배운 기초지식 위에 실제적으로 회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새롭게 이해하고 배운 지식이 그 뒤에도 제가 이 분야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 디스플레이 분야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학업에 있을 때는 제가 디스플레이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 당시 디스플레이 분야의 연구는 거의 초창기 시절이라 아주 기초적인 소재나 공정이 연구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전공이 디스플레이의 어떤 분야에 활용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원천 재료와 공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심도 있게 공부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이 이후에 크게 일어나게 된 디스플레이 산업의 니즈와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특별히 귀감으로 삼으시는 인물이나 스승이 있다면
▲“지금은 퇴임하신 삼성전자 이상완 사장님을 늘 생각합니다. 이분이야말로 우리나라 디스플레이가 세계 1위에 올라서는 데 큰 기여를 하신 분입니다. 회사에 재직하실 당시 초기 단계였던 디스플레이 시장을 기술적으로 견인해 세계적인 선진산업으로 부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흐트러짐 없는 자기 관리, 성실함,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분께 일뿐만 아니라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많이 배웠지요”
- 학부 입학부터 치면 30여 년을 과학기술인으로 살아왔다. 과학기술인으로 살며 가장 기뻤던 일을 말해달라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대개 여러 교수님들 앞에서 연구주제를 발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제가 학위 받을 당시에는 교수님들께 인정받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때 학위 심사를 통과했을 때가 여전히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10년 간 몸담은 뒤 다시 모교로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것도 기뻤습니다”
- 힘들었던 위기가 있었나
▲“박사 학위 연구를 토대로 삼성전자에서 디스플레이 구동소자 중 하나인 저온폴리실리콘(LTPS) 초기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는 저온폴리실리콘(LTPS)이 실제로 양산 디스플레이 제품에 채택되지 않았지요. 이 때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좀 더 투자하지 않는 회사가 야속했고 회사 내에서 마이너리티가 된 제 위치도 불안했습니다. 차세대 기술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장시간 연구개발만 해야 했던 그때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 인생의 좌우명 내지 연구에 임하는 철학이 있다면
▲“제 좌우명은 응립여수 호행이병(應立如睡 虎行以病)입니다.‘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는 말이지요. 조용히 기회를 살피다가 때가 되면 날카롭게 움직여 목표를 이루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조용히 기회를 기다린다는 것으로 강자는 요란스럽지 않고 자신을 낮추고 감춘다는 뜻이지요. 이 말처럼 연구에 임할 때는 섣부른 행동보다 모든 일을 항상 준비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는 누구보다 신중하게 행동으로 옮기고자 노력하고요”
-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어린 학생들이 꿈을 이루려면 어떤 자세와 덕목을 갖춰야 하나
▲“과학기술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사소한 것에도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학문은 다른 학문과 다르게 공식을 대입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존 결과에 대해 해석하는 것만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현상을 발견하고 분석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학생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궁금증을 갖고 생각하는 자세를 기르는 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 앞으로의 인생 계획에 대해 말 해달라
▲“저는 공과대학의 교수입니다. 학생들에게 학문의 기초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와 산업 현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가르쳐야 하지요. 또 제가 길러낸 학생들이 산업체에서 창의적이면서 실제 적용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인재 양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에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도록 적용 가능한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