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옥도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는 말(玉不琢不成器)과 같이, 다수의 FTA 협정도 우리기업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본지는 우리 기업들이 한국무역협회의 성공사례를 통해 더 많은 성공스토리를 써내려 가자는 취지에서 어떤 위기가 왔으며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했는 지 그 활용사례를 공유한다. <자료지원 한국무역협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정식 발효된 지 한 달여 무렵인 2012년 4월, F사는 자사 제품을 수입해 미국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는 바이어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앞서 회사가 수출신고를 하고 현지로 선적한 수송구(Automotive die)와 검사기(Check fixture)에 대해 바이어가 원산지증명서(C/O)와 재료명세서(BOM), 원가자료(Cost data), 생산 및 제조기록을 요청한 것이다.
수입된 물품의 원산지가 의심스러운 경우 수입국의 통관당국은 원산지 검증을 실시한다. 원산지증명서를 자율적으로 발급하는 것이 허용되더라도 허위 사실에 입각한 증명서 발급 및 FTA특혜관세 적용은 통관 이후 5년간 검증대상이
원산지검증 적극 대응하니 새 수출 기회가 되기 때문에 수입업체들은 수입을 할 때 원산지 관련 사항을 수출업체(생산업체)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에서는 회원국에서 자국 영역으로 수입되는 상품이 원산지 상품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입국은 △수입자·수출자 또는 생산자에게 서면으로 정보 요청 △수입자·수출자 또는 생산자에게 서면으로 질의 △수출자 또는 생산자의 사업장 방문 △섬유 및 의류에 대해서는 협정문 제4장 제3조(섬유 또는 의류 상품에 대한 세관협력)에 규정된 절차 △수입 및 수출 당사국이 합의하는 다른 절차 등의 수단으로 검증을 수행할 수 있다. 수입국이 서면 검증을 실시하는 경우, 상대국 통관 당국에게 정보 제공을 주선하도록 요청할 수 있으며, 수출국 통관당국은 수입국 요청에 응해야 한다.
검증 결과 해당물품이 원산지 상품이 아닌 것으로 예비 결정될 경우, 수출자가 원산지를 증명하는 추가 정보를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후 검증국가의 통관당국은 최종 결정을 수입자에게 서면으로 제공해야 한다. 만일 원산지를 속일 목적으로 수입자·수출자 또는 생산자가 근거 없는 진술·신고나 증명을 제공하는 것이 적발될 경우, 이들의 진술·신고 또는 증명의 대상이 되는 동일 상품에 대해 특혜관세대우를 중지할 수 있다.
F사는 바이어의 요청에 이어 미국 세관(CBP)으로부터 원산지 서면 검증을 요청하는 ‘정보제공요청서’(CBP Form 28, Request for information) 서류를 받았다. 이는 우리나라 관세청에 확인된 최초의 한-미 FTA 검증 사례로 기록됐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산업단지에 소재한 F사는 1994년 설립돼 정밀금형 및 정밀금형가공품을 전문적으로 제작, 생산하는 업체다. 프레싱용 공구 등 수공구용 공구를 제조해 미국, 캐나다, 일본 등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2014년 매출액은 62억원, 수출액은 600만 달러에 달했다. 지금은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토박이 수출기업으로 자리매김 했으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2000년 일본, 필리핀, 브라질, 미국에 금형제품을 수출한 F사는 2004년 무역의 날에 1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수출기업으로 발걸음을 뗐다. 2007년에는 자체 개발한 프레싱용 공구를 앞세워 수출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해외 마케팅 경험 부족으로 성과는 부진했다. 노력은 했지만 적극적이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 발효를 앞두고 F사는 광주세관으로부터 FTA 컨설팅 안내문을 수령했지만, 그 때에도 FTA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하나의 선택사항 정도로만 여기고 미온적인 반응을 보일만큼 관심이 저조했다.
바이어로부터 원산지 관련 서류를 요청받은 제품도 아예 처음부터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하지 않았던 터였기 때문에 왜 보내달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사실 FTA로 인한 일반적 관세혜택은 수입자가 누리는 것이다. 다만, 수출자는 관세절감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토대로 수출을 확대할 수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F사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F사는 광주세관을 비롯한 수출유관기관에 긴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세관에서도 이번 사례가 한-미 FTA 발효 후 첫 검증사례인 만큼 적극적으로 뛰었다. 미국 세관이 보낸 CBP FORM 28을 검토해 봤으나 정확한 대응책을 찾아낼 수 없었다. 해당 제품의 원산지 결정기준이 세번변경기준임에도 불구하고 원가자료를 요청한 것은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우리 세관 당국도 유사한 검증에 대응한 사례가 없었기에 미국 세관 측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F사는 제품 생산에 투입된 원재료 목록을 정리한 ‘재료명세서’(BOM, Bill of Material)를 작성해 통관대행 관세사를 통해 원산지증명서 발급 적정성 여부를 문의했다. 그런데 일부 품목에서 완제품과 부분품의 4단위 HS코드 가 달라야 하는 세번변경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완제품인 검사기의 4단위 HS코드가 9031인데, 부분품의 HS코드도 9031로 같았던 것이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F사는 바이어에게 검증 대응은 물론 그들이 원하는 FTA특혜적용 조치도 진행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바이어는 FTA 특혜를 받을 수 없다면 앞으로 진행할 모든 거래에 대해 중단을 포함한 재검토를 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내왔다. F사는 이번 사안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깨달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FTA 발효 전인 2011년만 해도 F사의 전체 수출액은 199만2,000달러였으며, 수출액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2%였는데, 발효 직후인 2012년에는 415만9,000달러, 89%로 각각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검증대응을 포기했더라면 미국시장을 잃는 것은 물론이요 회사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원산지 검증은 회사의 최우선 해결과제가 됐다. 최고경영자(CEO)를 팀장으로 구매·영업부서 실무자를 주축으로 한 테스크포스(T/F)가 가동됐고, 다수의 무역유관기관에 지원을 요청했다.
광주세관은 미국 주재관을 비롯해 관세청 본청의 미국 파견 직원들을 통해 미 관세청이 자국과 FTA를 체결했던 다른 국가들 기업에게 벌인 검증사례 가운데 F사와 유사한 내용이 있는지, 해결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는 한편, EU와 아세안 등 다른 FTA 검증 노하우를 바탕으로 품목분류, 원산지증명서발급, 원산지결정기준 등에 대한 체계적인 컨설팅을 실시했다.
CEO 지휘 T/F 구성, 방법 찾아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들여다보니 해결책이 보였다. 세번변경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품목은 ‘최소허용기준(미소기준, DeMinimis 또는 Tolerance Ruls)’을 통해 해결했다.
한-미 FTA에서는 일반품목, 농수산물, 섬유류로 구분해 최소허용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일반품목은 가격기준 10% 이하다. 농수산물에서 한정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섬유류는 제4장에서 별도로 규정하면서 탄성사 제품에 대한 별도의 요건으로 최소허용기준(중량기준 7%)에 도 불구하고 탄성사가 들어간 섬유제품은 원사가 어느 한쪽 당사국 영역에서 완전하게 형성되고 마무리 된 경우(원사기준, Yarn-Forward rule)만 인정한다.
광주세관 등 유관기관들의 도움으로 F사는 바이어가 요청하는 증빙서류를 보내 향후 거래도 지속하고 있으며, 미 세관의 검증도 적절히 대응한 것은 물론 FTA특혜관세 혜택도 받게 됐다. 수송구와 검사기의 미국 수입관세는 각각 57%, 1.7%였는데, 혜택을 받아 모두 0%가 됐다.
세관의 지원 덕에 원산지인증수출자 획득
F사는 검증을 통해 미국 수출에 있어 FTA 활용에 대한 자신감을 획득했다. 이제부터는 회사가 생산하는 유사모델·타모델의 한-미 FTA 활용 가능성 및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와의 FTA의 활용 가능성 여부를 파악해 방법을 도출하는 과제를 풀어나가야 했다. 광주세관에 FTA 활용 의사를 표명하고 FTA를 활용해 수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주는 ‘YES FTA’ 사업에 참여했다.
또한 재료비중 비원산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최소화 하고 특히 검사기(HS코드 제9031.80호)의 부분품은 거래선을 한국으로 전환해 내수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원산지 관리 능력이 부족해 자체적으로 원산지(포괄)확인서 발급이 어려운 협력사 및 공급사를 위해 F사는 자체 T/F 주도로 컨설팅을 실시해 정확한 원산지(포괄)확인서 발급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2014년 광주지역에서 최초로 진행한 ‘2014 광주·전라 수출입기업 채용 박람회’ 참여해 원산지관리사 교육을 이수한 전문인력 채용함으로써 전담 인력이 체계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F사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 FTA 활용 대상으로 유럽연합(EU)을 정했으며, 2014년 11월 한-EU FTA 품목별 원산지인증수출자 인증을 획득해 원산지를 자체적으로 발급할 수 있게 됐다. FTA에 문외한이었던 F사는 불과 2년여 만에 FTA 선도기업으로 대전환했다.
FTA 활용 4년 만에 수출 265% 급증
한편, F사는 국내는 물론 일본, 미국 등 해외 기업들과의 기술교류로 프레스금형의 기술적, 기능적 개발의 전문성을 갖추는 등 제품 수출경쟁력은 탁월했으나 해외 마케팅 역량이 부족해 바이어 발굴 노력이 한계에 봉착했다. 이에 광주시와 한국무역협회, 코트라(KOTRA) 등 무역유관기관들이 주최하는 글로벌 수출상담회와 전시회에 참가해 거래처 확대에 노력하는 한편, 해외마케팅을 비롯한 무역실무도 지원받아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FTA를 통해 F사가 거둔 성과를 숫자로 살펴보면, 2011년 199만2,000 달러였던 수출은 2014년 528만 달러로 265% 급증했으며, 2015년 700만 달러, 2016년 1,000만 달러를 목표로 순조로운 항해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 1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F사는 2012년 300만불 탑을 받은데 이어 1년 만인 2013년에 500만불 탑과 금탑산업훈장까지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해외 거래처도 다양화돼 2011년 5개 업체에서 2015년에는 10개 업체로 두 배 증가했는데, 2012년 원산지검증 대응 후 국제시장에서 신뢰를 얻었다. 지속적인 제품개발 및 디자인 혁신 노력 외에 FTA 활용을 통한 경쟁력 강화 덕분이었다. 또한, 모델 다양화와 수출물량 적기 공급을 위해 생산인력을 충원(2011년 28명→2015년 35명)했고, 공장도 광산구 하남공단(면적 1,983㎡)에서 진곡산단(6,276㎡)으로 확장 이전했다.
F사는 2015년 발효된 한-중 FTA를 통해 중국시장 공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제품 성능 및 모델의 차별화, 시설 첨단화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광주시 중점사업인 금형산업의 선도기업으로서 FTA 활용을 배가할 수 있도록 수출유관기관과 적극적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해외시장 개척단 활동에 적극 참여해 거래선 신규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지난해 기준 광주시의 금형산업 생산액은 1조3천억 원으로 광주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4%에 달할 만큼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는 효자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F사는 자사의 성공사례를 전파해 금형산업 전체가 FTA를 통해 도약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