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팅: 최수린 / 촬영·편집: 신수정>
대한민국의 대표 철공 클러스터로 자리했던 문래동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철공소와 예술 공방, 카페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문래창작촌’이라는 이름 아래 탄생한 이 이색적인 공간이 순탄히 존재하는 것만은 아닌듯하다.
바삐 돌아가는 물레들로부터 이곳에 ‘물레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1930년대의 방직 공장들이 자리를 뜨고, 1960년대에 철재 상가와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우렁찬 쇳소리를 뿜어내며 밤낮 바쁘게 돌아가던 문래철공소. 하지만 1990년대 찾아온 IMF 외환위기와, 첨단산업을 향해 변화하는 산업 구조,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한 도시산업시설 시외 이주정책 등에 철공소 원주민들은 하나, 둘씩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철공소의 빈자리를 먼저 찾은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술인이었다. 홍대, 대학로 등의 높은 임대료에 대한 대안과, 조용한 작업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이곳을 찾은 예술인들로부터 ‘문래창작촌’이라는 이름이 붙어 인지도가 높아지자, 레스토랑과 카페 등 요식업계도 문래동을 향해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2005년 문래동 내 3개에 불과했던 공방과 갤러리, 카페와 레스토랑 등의 문화 공간은 2018년 약 130여 개 이상에 달했다.
문래동에 다시 돌기 시작한 철공소 때와는 조금 다른 생기. 하지만 이 변화를 모두가 반기는 것만은 아니었다.
문래동의 한 금속가공 공장 관계자는 “여기서 무슨 장사를 한다고 하는지. 일하는데 와서 카메라 막 들이대고, 아버지뻘 되는 앞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라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철공소 관계자의 입장도 같았다. “사진 찍는 것 때문에 좀 불편하다. 음식점들이 생겨나면서 담배꽁초와 빈 병 등의 쓰레기가 늘어났다”라고 불만을 표했다.
채우고 힘들거나, 다시 텅 비어버리거나. 그 어느 쪽도 속 시원한 해결책이 돼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철공소와 예술, 요식업계 간에 갈등이 생긴 정확한 원인은 무엇이며, 이들의 진정한 공존을 위한 궁극적인 해결 방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더스트리 연구소 6화, ‘문래동에 찾아온 조용한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