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캐즘(수요 정체)’ 현상과 중국의 저가 공세로 올해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가격 인하를 위해 중국산 배터리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기차 화재 사고까지 더해졌다.
전방 산업인 전기차의 부진으로 그동안 성장세를 이어온 K-배터리의 성장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에 배터리 업계는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 고도화와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PHEV, HEV)에 사용된 배터리 총 사용량은 약 599.0기가와트시(GWh)로 전년 동기 대비 23.4% 성장했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판매량도 증가했으나 중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 상승에 밀려 시장 점유율은 하락했다.
SK온은 12.4%의 성장률을 보이며 28.5GWh의 사용량을 기록했고,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은 각각 5.4%와 4.3%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CATL과 비야디(BYD)가 각각 26.5%, 28%의 성장률을 기록해 한국 배터리 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그 결과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K-배터리의 점유율은 전년 대비 3.4%p 하락한 20.8%에 그쳤다.
한국과 중국의 배터리 경쟁은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삼일회계법인은 9월 발표한 ‘K-배터리 위기와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중국 업체들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인해 북미 시장 진출이 어려워지면서 유럽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CATL이 유럽에 공급하는 배터리 대부분이 한국 기업이 주력하는 삼원계(NCM) 배터리인 탓에 경쟁이 심화됐다는 설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CATL이 유럽 시장에 수출하는 배터리 중 삼원계 비중이 90%를 넘어서며 2020년 10.2%였던 CATL의 유럽 내 점유율은 지난해 35.5%까지 상승했다. 이로 인해 중국은 LFP 배터리와 삼원계 배터리를 동시에 공급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고, 저가 LFP 배터리를 주로 공급하던 중국 기업들이 고가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배터리 시장의 기존 판도가 변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BMS 고도화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며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중국보다 우위를 점한 BMS 기술을 강화하고 배터리 화재 예방 기술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김현준 LG에너지솔루션 BaaS(Battery as a Service) 담당은 지난 9월 국회에서 열린 ‘전기차 화재 대처’ 정책 토론회에서 “배터리의 전압, 전류, 온도 모니터링뿐 아니라 이상 징후를 판단하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약 8천 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안전진단 소프트웨어로 충전 중 전압 하강, 미세 내부 단락, 비정상 방전 등 다양한 불량 유형을 분석하고 있다.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는 올해 한국 배터리 산업 전시회의 중심이 됐다. 삼성SDI는 3월 ‘인터배터리 2024’에서 전고체 배터리 양산 로드맵을 발표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도 전고체 배터리를 핵심 전시 품목으로 내세웠다.
삼일회계법인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높은 안전성을 차별화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며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중저가 보급형 배터리 개발과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