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지난 8월 1일 인천광역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42대의 차량이 전소되고, 45대가 파손되었으며, 793대 이상이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연기와 분진이 배기구와 계단을 통해 퍼지며 아파트 5개 동 480세대에도 재산 피해를 남겼다.
“전기차 한 대가 아파트를 풍비박산을 만들었다” MBC PD수첩이 9월 10일 방영한 ‘청라 아파트 전기차 화재 사건’에서 한 아파트 주민은 이렇게 밝혔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전기차에서 발화가 시작된 것이다. 해당 방송에서 공개한 화재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화재가 발생한 지 5분 만에 검은 연기가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여러 사람이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했으나, 결국 10여 분 만에 불길이 주차장 전체로 확대됐다.
이렇게 ‘전기차 한 대’가 상당한 규모의 화재를 일으키며, 한국 사회는 전기차를 향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전기차 포비아(EV Phobia)’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며, 대형집합건물에서는 전기차 주차를 거부하거나 일부 공동주택에서는 화재 발생 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강요했다.
전기차와 충전인프라 업계는 이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전기차·배터리의 화재 위험에 대해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PLC 모뎀을 탑재해 화재를 예방하는 솔루션이나 배터리팩 상태 모니터링 솔루션 등을 전시회에서 선보여왔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BMS, 과충전 방지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후 서울특별시는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이 제한된 전기차만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언론에서는 ‘전기차 화재 청라 아파트 앞 단지에서 불…주민들 ‘아찔’’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보도했는데, 차량 내부에서 운전자가 연기를 발생시킨 사건이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업체 관계자는 “언론의 공포심 조성과 지자체의 섣부른 정책으로 전기차 사용자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기차가 차량 운전자들에게 미움 털이 박혀있던 것도 원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구역을 마련하면서 일반 주차구역을 전환하는 사례가 많은데, 해당 구역에 전기차가 아닌 차량은 주차할 수 없게 돼 일반 차량 운전자들 사이에 ‘자리를 뺏겼다’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PD 수첩의 화재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화재가 천장을 타고 뻗어나간다. 불길을 주차장 전체로 이송한 정체는, 천장의 배관이었다. 정확히는 배관의 보온재다. PD수첩에서 한국소방기술사회 박경환 회장은 “배관 보온재에 대한 규제는 화재 위험 고려 없이 보온 성능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 소방 당국에 따르면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로 화재 신호가 전달됐으나, 관리사무소 직원이 밸브를 정지시켰다. 오작동일시 민원 전화가 많아 현장을 확인한 후 작동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불길이 소방 전기 배선을 태워버렸고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문제로 ‘소 잃어도 고치지 않는 외양간’이 주로 꼽힌다. 원인은 달랐지만 비슷한 사건이 이미 있었다는 뜻이다.
2021년 8월 11일 천안시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출장 세차 차량의 영업용 LPG 가스통에서 가스가 누출되고 있었는데, 이를 몰랐던 세차 업체 직원이 차 안에서 담뱃불을 붙였다가 폭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에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고, 보온재가 불길을 주차장 구석까지 옮겨줬다. 화재감지기가 화재 신호를 전달했지만, 소방 시스템을 누군가 강제로 꺼버린 것까지 닮았다.
3년 전 소방 시스템 관리를 강화하고, 보온재에 방염 기준을 추가했다면 청라 아파트 화재 사고는 근처 차량 몇 대에 대한 피해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재난은 여러 과실이 합쳐져서 발생한다. 종합적인 원인 분석과 대책이 다음 재난을 방지할 수 있다. 전기차를 향한 질타는 충분하다. 대책도 마련되고 있다. 이제 ‘전기차 화재’라는 현상 뒤에 숨은 ‘지하주차장 비 방염 소재’와 ‘소방 시스템 운용 미비’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다른 원인은 없었을지 더 살펴봐야 한다. 우리의 일상과 안전을 단속하기 위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