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서비스를 받는 풍경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리걸테크(Legal Tech), 즉 인공지능(AI)과 기술을 활용한 법률 서비스 플랫폼이 법조계 안으로 스미고 있다.
힘을 실어줄 관련 정책은 논의 단계이고, 법원은 조심스럽다. 리걸테크를 바라보는 시각 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기술은 이미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정책, 실무 현장, 기술 기업의 세 관점에서 리걸테크 현황을 진단한다.
![[법 곁의 기술③] 검색·추천·요약·작성…리걸테크가 바꾼 변호사의 하루](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5/06/25/thumbs/thumb_520390_1750833684_14.jpg)
판례 검색에서 계약서 검토, 소송 절차 보조까지 과거 법무법인의 영역이던 업무를 기술이 대신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이숙연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 위원장(대법관)은 지난 18일 '2025 리걸테크 AI 특별 전시회' 축사에서 "리걸테크가 신속하고 정확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 법적 소외계층의 접근성을 높인다"며, "공공·민간의 협업이 발전에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에서는 실제 현장에서 변호사들의 ‘일’을 바꾸고 있는 리걸테크 기업들을 통해 기술이 법의 문턱을 어떻게 넘고 있는지 살펴본다.
![[법 곁의 기술③] 검색·추천·요약·작성…리걸테크가 바꾼 변호사의 하루](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5/06/25/thumbs/thumb_520390_1750833708_5.jpg)
"방대한 산업 특화 데이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법률 분야는 버티컬 AI와 찰떡궁합이다."
이진 엘박스 대표는 '2025 리걸테크 AI 포럼'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말하며 "법률 AI 에이전트를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평가·모델·데이터' 세 가지 측면에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엘박스는 생성형 AI 기반 판례 요약 플랫폼 '엘박스 AI', 사건 유사도 기반 변호사 추천 서비스 '엘파인드', 법률 전문 출판 브랜드 '엘박스 스칼라'를 운영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엘박스 AI'는 판사, 검사, 변호사, 경찰관 등 법률전문가로 이용자를 한정하고 있음에도 서비스 출시 1년만에 이용자가 2만 3천명에 달한다. 410만 건 규모의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운영 중이며, DB를 지속 확대해 가고 있다.
'엘파인드'는 광고나 네트워크 의존 방식에서 벗어나 사건 유사도를 기반으로 변호사를 매칭해주는 서비스다. 사용자가 입력한 사건 정보를 바탕으로 판례 문서 내에서 해당 사건을 처리한 변호사의 활동 이력과 전문성을 분석해 추천한다.
엘박스는 KT와 '공공분야 법률AX(AI Transformation) 사업 공동 대응을 위한 업무 협약' 체결을 통해 대법원이 진행하고 있는 '재판업무 지원을 위한 AI 플랫폼 구축 및 모델 개발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재판지원 AI 사업은 법원 업무 특화 AI 모델과 지능형 검색 및 리서치 서비스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예산은 145억 원에 달하며, △판결문·법령·학술 논문 등에 대한 AI 기반 검색 △재판 자료의 쟁점 사항 자동 추출 및 요약 △판결문 초안 작성 기능 개발 등이 포함됐다.
![[법 곁의 기술③] 검색·추천·요약·작성…리걸테크가 바꾼 변호사의 하루](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5/06/25/thumbs/thumb_520390_1750833723_100.jpg)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쓰는 변호사가 그렇지 않은 변호사를 대체하게 될 것이란 말이 꾸준히 나온다."
안기순 로앤컴퍼니 법률AI연구소장은 '2025 리걸테크 AI 포럼' 주제 발표에서 "AI는 법률업무를 재정의하고 있다. 단순한 생산성 증감이 아니라 역량의 증폭이라고 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로앤컴퍼니는 법률 종합 포털인 '로톡', 판례와 법령을 찾아주는 '빅케이스'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는 상용 법률 AI 서비스인 '슈퍼로이어'의 신기능 '롱폼'을 첫 공개했다.
'슈퍼로이어'는 법률 AI 비서 서비스로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다. 주요 기능은 법률 리서치, 초안 작성, 문서 요약, 문서 기반 대화, 사건 기반 대화 등으로 신기능 '롱폼'은 법률서면 작성을 효율화했다. 사용자 피드백과 실무 흐름을 반영해 법률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뢰도 높은 초안을 자동 생성한다.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데이터 기반 답변인지 확인하는 '팩트체커', 답변에 인용된 판례 및 법령의 인용 취지 적합성을 AI로 검증하는 '인용 적절성 평가' 등을 통해 환각(Hallucination)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로앤컴퍼니는 박영사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2024년부터 650여 권의 법률서적을 '슈퍼로이어'의 답변 기반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관계자는 "슈퍼로이어는 10개월여 만에 이용가입자 수 1만 명을 돌파했다"며 "현재 로펌과 기업 법무팀 등을 위한 특화 서비스도 준비 중"이라 밝혔다.
![[법 곁의 기술③] 검색·추천·요약·작성…리걸테크가 바꾼 변호사의 하루](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5/06/25/thumbs/thumb_520390_1750833692_14.jpg)
유니콘 없는 韓 리걸테크… 규제와 진흥 사이 '균형' 잡아야
시장조사기관 트랙슨(Tracxn)에 따르면 전세계 리걸테크 기업은 9400여 개이며 누적 투자 규모는 191억 달러(약 26조 4천억 원)에 달한다.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 규모는 2027년까지 356억달러(약 47조 8천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국내 리걸테크 기업 수는 59개사로 추정되며, 전세계 유니콘 기업 9개사 중 국내 기업은 없는 실정이다.
국내법·제도 정비가 빠르게 이루어진다면 국내 리걸테크 산업 발전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변호사법 충돌 가능성, 허가제에 따른 사업 진입 부담 등 법조계와의 조율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리걸테크 진흥법(리걸테크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 상임위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통과되더라도 리걸테크 업체가 법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허가제'로 인해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일정 금액의 자본금 보유, 변호사 등 전문인력 및 시설·장비 보유 등의 요건을 갖추도록 했는데 스타트업 단계의 기업들이 이를 충족시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업계는 토로한다.
AI 시대에 대응하려면 규제와 진흥의 균형을 고려한 정책 정비가 필요하다. 리걸테크의 법제권 편입 여부가 국내 법률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