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새 옷을 구매한 A씨는 기대에 부풀어 배송받은 택배를 열었지만 제품 하자를 발견했다. 교환을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으나 인공지능(AI) 상담사의 ‘**상담은 n번을 눌러 주세요’와 같은 안내가 여러 차례 이어졌다. 그러다 ‘환불은 앱 내 고객센터를 이용해 달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가 자동 종료됐다. 단순한 문의였지만 과정은 길어졌고, A씨에게는 불쾌감만 남았다.
고객센터 상담사 B씨는 AI 도입 소식을 들었을 때 감정노동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AI 상담 과정에서 쌓인 고객의 답답함이 결국 인간 상담사에게 쏟아지면서 더 강한 불만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AI 상담 서비스는 기대와 달리 고객 불만과 상담사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고객·상담사·관리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고도화된 AI 상담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짜증 누적 고객, 상담원에 쏠리지 않게 하는 해법”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기업 유베이스는 상담 접수부터 운영 관리까지 전 과정을 개선하는 AI 컨택센터(AICC) 솔루션을 선보였다.
권기둥 유베이스 그룹 경영혁신총괄은 ‘스마트 워크·컨택센터 엑스포 2025’에서 “AI 상담사 도입으로 30% 비용 절감 효과를 봤지만, 그 이면에는 문의 자체를 포기한 고객이 20~30% 존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상담원 연결까지 도달한 고객들은 이미 짜증과 초조함이 쌓인 상태라 대응이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베이스의 솔루션은 AI 라우팅봇이 고객의 발화에서 단순 키워드뿐 아니라 맥락을 분석해 복합 의도를 파악한다. 고객의 감정 상태까지 반영해 필요한 경우 즉시 상담원에게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권기둥 총괄은 지속적으로 쌓이는 녹취 데이터 활용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소비자 보호용 녹취는 일정 기간 후 자동 삭제돼, 상담원이 수기로 입력한 일부 내용만 남는다. 상담원 연결이 어려워지면서 한 번의 통화에 문의 내용도 늘어나 이마저도 효용성이 떨어졌다.
유베이스의 AICC 솔루션은 STT(Speech-to-Text) 기반 콜 상담으로 상담 내역을 카테고리별로 실시간 요약하고, 필요 시 통역까지 지원한다. AI 트레이너를 통해 회사의 정책 변화를 플랫폼에 바로 업데이트해 상담원이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권 총괄은 “이러한 상담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상담 단계에서 얻은 고객 니즈를 CRM(고객 관리)으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외국인 전화 상담도 편리하게…통역 기능 강화”
AICC 솔루션 전문 기업 아이컴시스는 세분화된 AI 상담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캠페인봇, 주소봇 등 무인상담 솔루션과 상담 가이드봇, 영상 상담, 외국인 전화상담 등의 상담사 지원 솔루션 등이다. 서비스는 필요에 따라 여러 조합이 가능하다.
아이컴시스의 상담가이드봇은 고객과 상담사의 음성 대화를 실시간 스크립트로 제공하고, 키워드와 맥락을 분석해 최적의 상담 가이드를 추천한다. 상담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 전달을 막기 위한 금칙어 알람 기능도 포함됐다.
김성휘 아이컴시스 이사는 “상담사 교육은 숙련도에 따라 보통 60시간에서 최대 120시간까지 필요하다”라며 “가이드봇은 상담 내용을 빠르게 복기하고 이해를 돕기 때문에 교육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컴시스는 최근 외국인을 위한 통역 솔루션을 출시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을 실시간 번역해 고객 발화를 한국어로 바꾸고, 상담사의 응답은 다시 해당 언어로 전달한다. 대화 내역은 실시간 텍스트로 기록돼 오번역 부분도 수정할 수 있다.
김 이사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약 270만 명에 이르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상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솔루션을 통해 다국어 상담사 의존도를 줄이고 외국인 고객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이컴시스는 AI 매니저를 통해 무인상담 데이터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불완전 발화를 분석해, 전체 솔루션의 시나리오를 지속적으로 최적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