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4년간(2020~2023) 6천646억 원을 투입한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지원 사업을 점검한 결과, 충전기 관리 부실과 보조금 부적정 집행 사례가 대거 적발됐다. 충전기 수만 기가 방치되거나 상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등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사업비 수백억 원이 용도 외로 쓰이고 ‘보조금 돌려막기’가 이뤄지는 등 회계 부정도 대거 적발됐다.
김영수 국무1차장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지원 사업에 대한 점검 결과 충전시설 관리 부적정 2만4천여 기, 사업비 집행 부적정 97억 원, 부가가치세 과소신고 121억 원 등 위법·부적정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점검은 국무조정실과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 환경부가 합동으로 지난 4월부터 진행했다.
가장 큰 문제는 충전기 관리 부실이었다. 사업자는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충전기 위치와 충전 가능 여부를 실시간으로 제공해야 하지만, 통신 오류 등을 방치해 2만1천283기의 상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
특히 한 사업자는 4천여 기 중 2천796기의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 1년 넘게 미운영 상태로 방치했다. 이로 인해 전국 아파트 단지 등에서 이용자 불편이 지속됐지만, 환경공단과 해당 업체 모두 적극적인 정상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미납 전기요금 납부·충전기 매각 등을 통해 정상화를 추진하고, 미사용 충전기 전수 점검과 민원 48시간 내 처리 의무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2022년 정기점검에서 일부 사업자가 보조금 의무운영기간 5년을 채우지 않고 충전기를 철거했음에도 환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가 인력·예산 부족을 이유로 정기점검을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즉각 환수 조치와 함께 충전기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현장점검 전담조직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조금 집행 과정에서도 위반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사업 수행기관이 설치 장소·수량을 임의로 바꿨는데도 보조금이 지급됐고, 사업 취소 후에도 59억 원의 선급금을 반납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한 사업자는 선급금 177억 원을 용도 외로 사용하고, 자회사를 충전기 매입 단계에 끼워 넣어고가에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다. 선급금을 다른 사업 비용으로 돌려막는 ‘보조금 돌려막기’도 확인돼 대검찰청 수사 의뢰가 이뤄졌다. 해당 업체는 환경공단에서 공모한 7개 브랜드사업 중 5개를 착수조차 하지 않아 취소된 전력이 있다.
사업 수행기관 선정 과정도 허술했다. 신생기업에 경영상태 평가 만점을 주는 바람에 경영 불안정한 업체가 선정되기도 했다. 이들 업체 2곳에서만 최근 4년간 전체 충전기 고장의 81%에 달하는 2천112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평가 항목에 기술등급 신설, 정량평가 확대 등을 도입해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수행기관들이 보조금을 부가가치세 납부에 충당해 총 121억 원을 과소 신고한 사례도 44건 적발돼 정부는 각 기관에 수정 신고를 지시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전국 전기차 충전기는 47만 기, 전기차 등록 대수는 77만5천 대로 충전기 한 기당 차량 1.7대 꼴이다. 급속충전기는 5만5천 기로 전체의 15%, 나머지는 아파트·상가 등에 설치된 완속충전기다. 정부는 “충전기 보급 규모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 평가했지만 관리·운영 부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점검 결과를 토대로 △부적정 지급액 환수 △선급금 분할 지급 △충전기 모니터링 강화 △사업자 선정 평가 기준 개편 △환경공단·협회 관리 강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영수 국무1차장은 “국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전기차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