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경기도 5070 일자리박람회’ 현장을 시작으로, 중장년 구직자와 채용기업, 관계기업 담당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획 시리즈 [노동의 2막]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은퇴’가 더 이상 일의 끝이 아닌 시대. 세대의 경계를 넘어, ‘다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희망과 현실을 들여다본다.
‘경기도 5070 일자리박람회’가 14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렸다. 지역 순회형 박람회로 지난 7월부터 진행 중이지만, 현장은 이날도 구직자들의 열의와 우려가 뒤섞인 채 붐볐다.
박람회에는 145개 기업·기관이 참여했고 채용 희망 수는 1천 명이었지만, 이날 방문자는 사전등록과 현장등록을 합해 5천여 명으로 잠정 추산됐다.
먼저 취업지원관으로 갔다. 퍼스널컬러를 진단해 내게 맞는 면접 메이크업을 받은 뒤 이력서에 붙일 사진 촬영도 가능했다. 전시장 양쪽에 마련된 이력서 작성대에서는 구직자들이 인쇄된 사진을 가위로 조심히 잘라 붙인 뒤 꼼꼼히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5070 학습관’에서 진행된 ‘챗GPT(챗지피티)를 활용한 이력서 작성’ 강의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강의를 진행한 류현백 모던사피엔스 대표는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며 “챗지피티를 활용하면 문답을 통해 이력서 작성이 더 쉬워지고 내용도 다채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시간이 짧은 대신 수업 종료 후 참석자들의 이메일을 받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프롬프트와 샘플 이력서를 보내드리고 있다”며 “강의 후에 ‘새롭게 배워서 좋았다’는 후기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강의가 끝난 뒤 만난 남성 구직자 김 씨(부천시, 58세)는 “워낙 전 분야에서 지배적인 기술인 만큼 관심 갖고 들어봤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긴 하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반도체 생산직으로 일했고, 물류 배송업에도 종사했던 김 씨는 퇴직 후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 전과 같은 생산직이나 물류 업무도 좋지만, 경비 업무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경기 남부인) 부천에 살고 있어 (참가 기업들이) 경기 북부 위주로 채용할까 걱정된다”며 “집과 가까운 곳에 일자리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채용관을 둘러보다 막 면접을 마친 여성 구직자 최 씨(고양시, 58세)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사무 회계, 경리 업무를 해오다 일을 쉰지 1년이 돼 간다고 했다. 최 씨는 “나이 때문인지 이력서를 넣어도 재취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던 와중에 5070 일자리박람회 소식을 듣고 와보게 됐다”며 “다만 하던 직무를 최대한 이어가고 싶은데 (박람회 현장에) 사무직을 뽑는 곳이 많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 씨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육아 퇴직 후 재취업한 중소기업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지만 경영 악화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 자발적 퇴사가 아님에도 사무직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최 씨는 “면접을 보러 가면 회사 위치가 너무 멀거나, 대표님이 과격하고 무서운 곳도 있었다”며 “최근 입사했다 기존 직원의 텃세로 두 달 만에 그만둔 곳도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처음으로 일자리박람회를 찾았지만 사무직 채용 회사가 적었고, 그나마 면접이 이뤄진 곳도 집과 거리가 멀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교육 서비스업, 출판 교육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조금 이른 퇴직을 했다는 박 씨(고양시, 56세)는 시니어 교육 분야 면접을 봤다. 그는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관리·회계·인사가 전문 분야고, 교육 강의 등을 해 온 이력이 있다”며 “시니어를 위한 디지털 문해력, 인지력을 높이기 위한 수업을 진행할 강사 자리는 괜찮은 업무 같지만, 파트타임 고용형태나 강의비가 아쉽다”고 털어놨다.
박 씨도 지난 경력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직무를 원했다. 그는 “내가 해온 일을 이 나이에 또 연계할 수 있는 직무인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고, 그 다음이 급여”라며 “(중장년 취업 시의 급여 감소는) 구조적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력서 작성부터 직무 상담, 기업 연계를 돕는 커리어코칭 창구와 은퇴설계, 창업 상담이 진행된 재무상담 창구로 꾸려진 ‘5070 상담관’은 행사 내내 분주했다.
행사 종료를 10여 분 앞두고서야 한 커리어코칭 강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그 사이에도 다급하게 자기소개서를 검토받으려는 구직자가 있어 순서를 양보했다. 이날 커리어코칭을 진행한 강사는 7명이었지만 기자가 만난 강사만 해도 20명 이상을 내리 상담했다고 했다.
커리어코칭 강사 A씨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분들께도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하고 로드맵을 세우시라고 계속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경험 삼아 오는 분도 있고, 정말 답답하고 막연한 마음에 상담하러 오는 분도 있다”며 “소위 고스펙의 퇴직자가 같은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니 일자리 매치가 더 어렵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격증부터 땄는데 직무 경험은 없어 전혀 활용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날 개막식에서 경기도일자리재단 윤덕룡 대표이사는 “내가 하던 일, 잘하는 일만 하기보다는 수요에 따라 다른 일도 해보겠다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프로그램 및 일자리재단의 교육 시스템 등을 적극 활용해 관련 분야의 기술을 하나라도 더 익혀야 한다고도 했다.
중장년 재취업 지원을 위해 모인 관련 기관 관계자들과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당부는 청년들이 취업을 앞두고 듣는 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공고게시판을 살피고, 신중한 손길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면접을 기다리는 중장년 구직자의 눈빛도 마찬가지다.
박람회장의 불빛은 꺼졌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이력서를 고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면접 결과를 기다린다. ‘일할 수 있음’과 ‘일하고 싶음’ 사이의 간극. 그 틈을 좁히지 못하는 사회의 구조를, 다음 기사에서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