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이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정년연장과 계속고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경직된 구조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유지한 채 법적 정년만 일률적으로 연장할 경우, 청년 신규 채용이 급감하는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제기됐다.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 감소 없는 고용연장제도 마련 국회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덕호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현 보호 구조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신규 채용 축소는 당연한 수순”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단순한 정년 연장 논의를 강하게 경계했다. 한국은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호봉제) 탓에 퇴직 직전 임금이 가장 높다. 그는 “저성과자도 정년까지 고액 연봉을 받으며 고용이 유지되는 구조”라며 “이런 상황에서 정년만 늘리면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신규 채용을 억제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청년층의 소비 위축과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일례로 김 교수가 제시한 통계청 연령대별 취업자 조사를 보면 지난 5년간 20~40대 취업자 비중은 감소한 반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약 200만 명 급증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60세 이상 취업자 비중이 20년 전 1.1%에서 최근 4.7%로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미국이나 영국 등 고용 유연성이 높은 국가에서는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일자리 구축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한국은 연공급제와 해고 경직성 때문에 구축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온도 차도 지적됐다. 김 교수는 “중소기업은 이미 인력난으로 인해 정년과 무관하게 고령자를 재고용하고 있다”며 “법으로 정년을 강제할 경우, 지불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과도한 비용 부담을 지우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일률적 법적 강제’ 대신 ‘패키지형 개혁’을 제안했다. 그는 고용 형태, 임금 체계, 직무 조정, 안전 장치, 지원 체계 등 5가지 축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본이 20년에 걸친 사회적 합의로 충격을 흡수했듯 우리도 정교한 설계가 필수”라며 “만약 고용과 임금 체계가 유연화된다면, 정년을 65세로 묶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정년 폐지’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심은 노동시장의 벽을 허무는 것”이라며 “직무급 도입과 유연성 확보 없는 ‘묻지마 정년 연장’은 청년과 고령자 간의 ‘세대 전쟁’만 부추길 뿐”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