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대한민국 자율주행 산업계가 격변의 한복판에 섰다. 불과 한 달 전, 국내 자율주행 ‘1호 상장’을 목표로 내걸었던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이하 A2Z)가 코스닥 상장을 위한 기술성평가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 업계 전반에는 상장 심사 기준에 대한 불확실성과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100만km에 달하는 업계 최고 수준의 누적 주행거리와 견고한 매출 성장세(전년 대비 73% 증가)를 기록한 대장주의 탈락은 국내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에 큰 충격이었다. 자본시장이 들이민 칼날은 냉혹했다. 기술은 훌륭하지만, 매출 대부분이 정부 및 지자체 연구 용역(B2G)에 치중돼 독립적인 ‘시장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시장의 비관론을 단숨에 뒤집는 반전이 일어났다. 이달 21일 또 다른 풀스택 자율주행 스타트업 라이드플럭스가 전문 평가기관 두 곳으로부터 각각 ‘A·A’ 등급을 획득하며 연내 코스닥 상장의 직행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불과 한 달 사이에 갈린 두 리딩 기업의 희비는 국내 자율주행 산업의 생존이 ‘기술의 완성도’를 넘어 ‘독자적 수익 구조 확보’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자본시장이 외면한 이들의 기술력이 결코 대기업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 주도 ‘광주 자율주행 실증도시 조성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에 기술력과 운영 역량 평가 등에 따라 실증 차량 200대를 차등 배분했는데, 스타트업인 A2Z가 가장 많은 80대를 확보했고, 라이드플럭스와 현대자동차가 각각 60대씩을 배분받았다. 스타트업들이 실전 도심 주행 및 데이터 최적화 역량에서 자율주행 계열사 포티투닷(42dot)에 수조 원을 쏟아부은 현대차를 정면 승부로 누른 셈이다.
그럼에도 왜 자본시장은 A2Z에 고배를 안기고 라이드플럭스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두 기업 모두 인지·판단·제어를 아우르는 독자적인 레벨4 풀스택(Full-stack)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회사가 선택한 ‘비즈니스 모델의 무게’에서 답을 찾는다.
A2Z는 기존 완성차를 개조하는 수준을 넘어,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전용 무인 셔틀 ‘로이(Roii)’ 양산을 선언했다. 소프트웨어 완성도를 높이고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직접 차량 하드웨어 제조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힌 것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에 따르면 레벨4 자율주행을 위한 보험, 안전 기준 등 핵심 법제도와 V2X(차량·사물통신) 인프라가 완비되는 시점은 2028년 전후로 전망된다. A2Z의 로이 양산 시점 역시 이 정부 로드맵에 맞춰져 있다.
업계에서는 하드웨어 생산망 구축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반면, 제도가 완비되는 2028년 전까지는 본격적인 민간 매출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심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한다. 그 공백기를 메울 공공 실증사업(B2G) 실적은 상장 심사에서 지속 가능성을 증명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라이드플럭스는 대규모 하드웨어 제조 투자를 지양하고 소프트웨어와 운영 플랫폼에 집중하는 자산 경량형 노선을 고수했다. 이들은 서울 상암동에서 국내 유일의 무인 허가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시험운행을 진행하며 연내 일반 시민 대상 로보택시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또 지난 4월 동서울~진천 구간에 국내 최초로 자율주행트럭 유상 화물운송 허가까지 취득하며 기업 간 거래(B2B) 물류 시장에 진입했다.
라이드플럭스 측은 “업계 대표 격인 A2Z의 기술평가 탈락 소식에 내부적으로도 긴장감이 컸던 것이 사실”이라며, “파두 사태 이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 기준이 한층 까다로워졌음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상장 심사를 앞두고 획득한 화물 유상 운송 허가 등 B2B 전략에 대해서는 일회성 상장용 카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라이드플럭스 관계자는 “‘B2G 위주의 매출 구조는 시장 확장에 한계가 있다’”며 “‘일찌감치 B2B 시장으로 사업 모델을 확장해 온 것이 심사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민간 기업과 소비자가 직접 지갑을 여는 ‘진짜 영수증’을 거래소 심사위원들에게 증명해낸 것이 ‘A·A’라는 합격증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벤처투자업계는 이에 대해 명확한 진단을 내놓았다. 정부 R&D 자금은 초기 기술 개발의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했고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을 넘어서는 기술력을 갖추도록 도왔지만, 이제는 당장 수익화가 가능한 틈새 시장을 기업이 스스로 찾아 생존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K-자율주행의 1막이 ‘기술의 완성도’를 겨루는 장이었다면, 상장 문턱에서 시작된 2막은 ‘돈을 버는 구조’를 증명하는 장이 됐다. 정부가 차려준 실증의 늪에 안주하는 기업은 용역업체로 남고, 그 판을 활용해 민간의 상업적 영수증을 채오는 기업만이 자본시장의 선택을 받는 냉혹한 생존 공식이 증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