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 경제를 활성화시킬 의무가 있다. 이는 경제발전과 가장 밀접한 부분이 바로 산업이기 때문이다." 강태진 서울대 공대학장은 한국기계산업진흥회 주최로 열린 제4회 기계산업 경영자 조찬포럼에 참석 '지식기반사회와 산업경쟁력'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점차 세계화 되고있는 경제구조 속에 우리 산업구조에 대한 경쟁력 강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그는 기술과 정보가 결합되는 산업 융합화시대에 맞춰, 양질의 공학교육과 이공계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앞으로 예견되는 지식기반 산업구조에 대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강태진 학장의 이날 주제발표 내용을 발췌 요약 소개한다. - 편집자주
우선,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이 갖춰야 할 요소로는 첫째 뛰어난 국가경영능력, 둘째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정된 군사력, 셋째 국민들의 높은 소득수준이며, 마지막으로 높은 사회문화 수준을 유지하는 국민 생활의 질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부의 수준이 높다고 해서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는다. 높은 부의 수준에 그 국가의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질 높은 문화를 공유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정치·경제·과학기술력 겸비한 강중국
현재 한국이 지향하는 바는 '강중국(强中國)'이다. 강중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력, 정치력과 함께 이를 뒷받침 해주는 과학기술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창의력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배출되고, 개척·모험정신, 진취력, 근로력을 갖춘 국민들, 그리고 이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지도력 또한 과학기술력을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산업의 전략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산업의 경쟁 대상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가 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실정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위한 인재가 고루 양성되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육에 있어 문과계열은 대부분 법조계로 진출하고, 이과계열은 한·의학으로 진출하는게 태반이다. 더욱이 법조계나 한·의학의 경쟁 상대는 국내에 머물러 있다. 산업이 국가의 부와 연결돼있는 만큼 정부에서도 공학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학교육은 방치돼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80년대 민주화 이후 공학교육에 대한 투자는 거의 전무하다.
이러한 문제제기 연장선상에서 사회발전의 경향을 살펴보고, 앞으로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아보자.
20세기의 큰 트렌드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 기술혁명(Technology Revolution)이다. 그리고 사회계급혁명(Social Class Revolution), 여성혁명(Feminine Revolution) 및 젊은층의 사회적 지위 상승(Youth Revolution)이 있다. 특히 여성혁명의 경우, 여성의 참정권 보장과 함께 사회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산업노동력이 크게 양산돼 경제가 발전했다. 그리고 이제 젊은이들은 예전의 젊은이와 틀리다. 현재 10대들만 봐도 나이는 어리지만 문화, 콘텐츠 등과 관련해 폭발적인 구매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산업발전에 있어 무시하지 못한다.
21세기의 트렌드는 20세기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21세기는 한마디로 "인간친화적 기술(Humanized Technology)"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디지털·유비쿼터스 기술과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복지·환경산업이 있다. 개인화와 다양한 삶의 방식, 자신만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것과 함께 세계를 하나로 묶는 커뮤니티도 있다. 이렇듯 상반되는 개념들이 공존하고, 하나로 조화시키는 것이 "인간친화적 기술"이다.
변화하는 21세기 산업 패러다임
이에 21세기 산업 패러다임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 '기능'에서 '감성'으로, '소유'보다는 '경험'으로, '대량생산(Ready-made Value)'에서 ‘개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는(Tailored Value)’ 생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IT, BT, NT, AI 등 혁신적 기술의 출현은 이 모든 것들을 '융합'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특히 21세기에는 산업 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서로 융합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을 보더라도, 이제 기계만 잘 만든다고 자동차산업을 주도할 수 없다. 자동차산업에는 기계뿐만 아니라 전자, 정보통신 등 각 산업분야가 총 망라된다. 의료장비 또한 기계, 전자, 소프트웨어, 의학 등의 융합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건설, 기계·장비, 에너지, 컨텐츠, 우주항공, 보건·의료 등 각 산업이 한데로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학교육도 지금껏 단순한 엔지니어만 길러냈는데 주력했으나, 앞으로는 고도의 기술을 고루 갖춘 엔지니어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전의 경제는 생산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오늘날의 경제는 지식에 기반을 둘 것이라는 점이다. 즉, 앞으로의 산업발전은 ‘지식’이 주도하며, 기존 발달된 기술력에 인적자원을 배가하는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OECD의 정의에 따르면, 산업발전에 있어서 정보와 지식의 창출·확산·활용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지식기반산업’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R&D 활동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비중이 해당 산업 평균보다 50% 이상인 지식집약산업이 바로 ‘지식기반산업’이다. 즉, ‘지식기반산업’은 인간의 창의성에 기초를 둔 지식을 핵심적인 생산요소로 활용하는 산업이며, 인간의 지식과 지적 능력을 생산과정에 최대한 활용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루거나 신기술산업을 창출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지식기반사회의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기술력’과 ‘인적자원의 질’이다.
'기술력’은 수천년 전 ‘경험으로서의 과학(Experimental Science)’에서 수백년 전의 ‘이론적 과학(Theoretical Science)’으로, 또 수십년 전의 ‘컴퓨터 과학(Computational Science)’에서 오늘날의 ‘e-Science’로 발달했다.
국가경쟁력 29위 대학경쟁력 40위
‘e-Science’는 산업계의 경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각 산업 영역이 하나로 융합하고 있는 만큼, 산업의 경쟁 상대는 같은 산업계가 아닌 다방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영역이 될 것이라 예고한다.
‘인적자원의 질’과 관련해, 미국의 경우 기업이 시설투자를 10% 증액한 경우 생산성이 3.6% 향상됐으나, 교육훈련투자를 10% 증액한 경우 생산성이 8.4%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생산성 증가 측면에서 시설투자보다 인적자원 투자가 더욱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양질의 인적자원의 중요성은 자본기술이나 물적요소를 능가해 단순한 ‘경제’가 아닌, ‘지식기반 경제’의 모습을 출현시킨다.
이러한 인적자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양질의 대학교육은 필수적이다. 중국이 대학을 경제성장의 촉진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듯 대학은 국가경쟁력의 도구다. 대학은 경쟁력 확보하는데 필요한 고급 숙련인력을 양성하고,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사회통합 촉진 및 성장·분배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세계 29위인 반면, 대학경쟁력 순위는 세계 40위에 머무르고 있다. 싱가포르가 국가경쟁력 세계 2위, 대학경쟁력 세계 1위를 자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지만, 대학경쟁력 수준은 월등히 낮다. 한국,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의 대학경쟁력을 항목별로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대학경쟁력 수준은 모두 하위권에 머물렀다.
▶‘대학교육의 경쟁사회 요구 부합 정도’에 대한 결과를 보면, 미국>영국>프랑스>일본>한국 순이다. 특히, ▶‘기업과 대학 간 지식이전의 충분 정도’ 결과는 미국>일본>영국>한국>프랑스 순으로 나타났으며, ▶‘국민 1인당 연구개발 투자액’은 일본>미국>프랑스>영국>한국 순으로, 지식기반사회의 기틀이라 할 수 있는 대학경쟁력이 모든 부문에서 최하위의 성적이다.
기업과 민간지원을 통한 인재양성
대부분의 항목에서 최상위 성적을 나타낸 미국은 실제로 대학 공학교육에 대한 기업·민간의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 중요한 신기술의 상업화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Lockheed-Martin, Rolls-Royce PLC, Intel, Cisco 등 기업은 공통적으로 공학교육에 대한 투자·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각국에서는 세계적 명성의 대학과 해외 유학생을 자국에 유치하고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즉, 산업발달에 있어 각국은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민간에서 책임지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한국 또한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대학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산업관련 공학교육의 글로벌화는 시급히 추진해야 할 목표다. 공학교육과 공학 연구환경이 급속히 글로벌화 되고, 이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응노력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학교육은 20세기 중반 이후 크게 발전했으나, 21세기에는 글로벌화의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발전하고 있지 못하다. 이에 반해 아시아에 위치한 일본, 싱가포르 등은 타 문화에 수용적이며 국제협력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국가들은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적인 공학교육의 틀을 벗어나 산학협력, 시장환경 및 사회수요를 반영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리고 대학의 교수 채용, 평가 방식의 변화와 더불어 산업체의 적극적인 투자·지원과 정부의 지원 정책이 요구된다. 공학교육 인프라 구축 및 사업 수행에 대한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