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디지털 세계에 머물던 인공지능(AI)이 물리적 실체인 로봇과 결합해 산업 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올해 초 개최된 ‘CES 2026’에서 엔비디아(NVIDIA)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피지컬 AI’를 차세대 핵심 동력으로 지목한 이후, 제조 현장은 단순 반복 작업을 넘어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지능형 자동화 2.0 시대로 진입 중이다.
그간 신발 제조는 대표적인 자동화 사각지대로 꼽혔다.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이 고도의 자동화를 달성한 것과 달리, 신발은 가죽·고무·직물 등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비정형 소재를 다루기 때문이다. 소재 특성상 생산 시마다 형태가 미세하게 변해, 미리 입력된 좌표를 따라 움직이는 기존의 자동화 방식으로는 공정 구현에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전 세계 신발 제조업 종사자는 약 458만 명에 달하지만, 여전히 숙련 인력의 수작업 의존도가 높다. 세계경제포럼(WEF)은 3월 보고서를 통해 “기존 자동화 시스템은 물성이 달라지는 가변형 소재를 조작하는 근본적인 장벽을 넘지 못했다”고 분석하며, 이를 제조 현장의 해묵은 난제로 규정했다.
국내 AI 로보틱스 전문기업 씨메스로보틱스가 지난 7일 발표한 52억 원(약 360만 달러) 규모의 수주는 이러한 기술적 장벽을 실제 양산 현장에서 허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사의 제조 공정을 담당하는 기업에 공급되는 이번 솔루션은 신발 제조의 핵심 공정을 로봇 자동화로 대체한다.
기술의 핵심은 소재의 변형을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지능형 로봇 솔루션이다. 씨메스로보틱스의 기술은 3D 비전으로 물체의 표면 데이터를 인식한 뒤, 이를 바탕으로 로봇이 구동해야 할 경로를 실시간으로 생성한다. 모델이나 사이즈가 변경되더라도 별도의 복잡한 재학습 과정 없이 즉각 대응이 가능해 다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유연한 공정 운용이 가능하다.
씨메스로보틱스 관계자는 “고정값(티칭) 방식으로 정해진 궤적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상황에 맞춰 작업한다”며 “마이크로(μm) 단위의 정밀도를 가진 3D 비전이 소재의 굴곡과 표면 데이터를 인식하면, 로봇 지능이 이를 물리적 좌표로 변환해 실시간으로 이동 경로를 생성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파편화됐던 비전 인식과 로봇 구동 기술을 하나의 ‘로봇 셀(Robot Cell)’로 통합해 실제 양산 현장에 구현했다”며 “컴퓨터 속 데이터와 물리적 세계를 완벽히 동기화하는 것이 피지컬 AI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노동집약적 소비재 시장 전반으로 솔루션 공급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례는 자동화 기술 도입이 지체됐던 노동집약 산업군에서 피지컬 AI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캡제미니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경영진의 67%가 피지컬 AI를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평가하고 있으며, 올해를 기점으로 실험실 수준의 기술들이 실제 제조 현장에 대규모로 배치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리서치앤마켓 등에 따르면, 올 한 해 전 세계 AI 제조 시장이 전년 대비 44% 이상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씨메스로보틱스의 이번 성과는 한국형 피지컬 AI 기술이 글로벌 제조 표준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동화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기술력은 고질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과 글로벌 공급망 효율화의 핵심 동력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