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이 17일 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고종황제가 사용했던 국새를 공개하고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국새는 국외반출 중요우리문화재의 유물구입을 통한 국외문화재환수 일환으로 2008년 12월 소장하게 된 것으로 미국에서 발견됐다. 회수한 국새는 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현존하는 유일한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국새로,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에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분실된 국새다.
국새는 외함(寶籙·보록)이 분실되고 내함(寶筒·보통)만 남아있는데 전체높이 4.8cm, 무게는 794g이다. 손잡이(寶鈕·보뉴)는 거북형이며, 비단실로 짜여진 끈(寶綬·보수)이 달려있다. 정사각형의 인장면에는 “皇帝御璽”라 양각되어 있다. 내함은 황동(黃銅)의 재질로, 2단으로 되어 하단에는 인주(印朱)를 넣을 수 있도록 돼있고, 그 윗단에 국새를 넣는다.
뚜껑은 네 면을 경사지게 꺾어 마무리 하였다. 하단과 뚜껑의 내부는 붉은 비단을 직접 접착하여 마무리하였으나, 국새가 들어가는 상단은 두께 0.5cm의 소나무로 내곽을 만든 뒤 붉은 천을 붙여 마무리하였다. 성분분석결과, 거북형손잡이는 은(銀)과 금(金)의 비율이 81:18이며, 몸체(寶身·보신)는 57:41의 비율로 은이 많이 사용되어 손잡이와 몸체가 따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새의 글씨 중 황제의 “皇”은 “白”의 아래에 “王”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어새에서는 “自”의 아래에 “王”으로 표기되었다. 이외에도 고종친필의 비석이나 그 당시에 제작된 각종 비석군(碑石群), 어보(御寶), 의궤(儀軌) 등에서 확인되는 “皇”자는 모두 “自+王”으로 적어서 나타내었다.
고종황제가 독일, 이태리, 러시아, 프랑스 황제에게 보낸 10여통의 친서에 사용한 황제어새는 두 종류가 확인되고 있는데, 한 종류는 1903년에 이태리황제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글씨체가 둥글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다른 한 종류는 1906년에 러시아황제 등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글씨체가 각이 지고 반듯한 분위기이다.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유리원판사진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번 확인된 국새에 대한 제작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문화각(文華閣)의 옥새와 책문(冊文) 등을 보수하도록 하다”라는 고종실록의 기록(광무5년 11월 16일)으로 미루어 1901~1903년 사이에 제작되어 1903년에 이태리황제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시기에 만들어진 어보(御寶, 의례용)와 국새(國璽, 실무용)를 비교해보면, 어보의 무게는 3.4kg으로 국새의 4배에 달하며, 크기에도 큰 차이가 있다. 주재료에 있어서 어보는 은과 구리가 주성분인 반면, 국새는 은과 금으로 제작되어 의례용과 실제 사용함에 있어서의 구별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향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이 국새에 대하여 국가지정문화재(국보) 지정신청을 함과 동시에 적절한 시기에 일반시민들에게 특별공개 할 예정이다. 또한 덕수궁 석조전의 대한제국실이 복원되면 고종관련 자료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