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정보기기를 연결해 주는 통로인 디스플레이는 우리에게는 눈과 같이 중요하며“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스마트폰, 노트북, TV 등의 제품에서 디스플레이는 핵심 부품이며, 디스플레이 시장규모는 2014년 1,450억 달러가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분야다.
지난 10년간의 디스플레이 기술의 주요 변화를 살펴보면 브라운관(CRT)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액정디스플레이(LCD)와 경쟁하던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PDP)도 올해 생산이 중단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으며, 유기발광 다이오드(OLED)가 액정디스플레이(LCD)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는 뛰어난 디스플레이 성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휘거나 투명하게 만들 수 있어 장차 시장을 주도하는 디스플레이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앞으로도 디스플레이 기술의 진화는 멈추지 않고 유기발광다이오드를 능가하는 새로운 혁신적인 신기술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유기발광다이오드 제품이 양산되기 시작한 2007년부터 이후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반도체 양자점(Quantum Dot, QD)의 우수한 광학적 특성에 주목하게 됐다.
양자점은 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나노결정으로 양자역학적 현상에 의해 기존의 벌크 반도체와 다른 독특한 에너지구조와 광학적 특성을 나타낸다. 특히 양자점은 크기 조절을 통해 빛의 삼원색을 포함한 가시광선 전체에서 원하는 파장의 빛을 내게 할 수 있고 발광선폭이 좁아서 다른 형광체보다 색순도가 우수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디스플레이 재료로 유망하다.
지난 1994년에 최초로 양자점을 이용한 발광다이오드(Quantum Dot light emitting diode, QLED)가 발표된 이후에 많은 연구를 통해 성능을 향상시켜 왔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에 비해 발광효율과 수명이 아주 낮은 문제점이 있었다. 특히 양극 및 양공을 전달하는 층(양공수송층)과 양자점이 닿는 면에서 에너지 장벽이 높아서 양공이 양자점 내부로 잘 주입되지 않고 반대 전극으로 누설되거나 소자 내부에 갇히는 등 발광효율과 소자의 성능이 급속히 떨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2012년에 기존의 양자점 발광 다이오드에서 양극과 음극을 반대로 뒤집은 역구조 양자점 발광다이오드 (inverted QLED)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경우 양자점의 원자가띠와 에너지 차이가 작고 양공 전달성이 우수한 유기반도체를 양자점 박막 위에 쉽게 형성할 수 있어서 양공이 양자점 내부로 원활히 들어갈 수 있게 돼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기존 소자와 구동방향이 정반대인 역구조 양자점 발광다이오드에서는 일함수가 큰(약 4.8 eV) 인듐주석산화물(ITO) 전극이 음극으로 동작하고, 일함수가 작은(약 4.2 eV) 알루미늄 전극이 양극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서울대 이창희 교수 연구진은 오랜 기간 유기발광다이오드와 유기태양전지를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산화아연(ZnO)을 도포하는 방법을 창안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투명하고 일함수가 낮은(약 4.0 eV) 산화아연(ZnO) 나노입자를 인듐주석 산화물(ITO) 전극 위에 도포하면 전자는 산화아연(ZnO) 층에서 주입되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몰리브덴 산화물(MoO3) 박막을 양공수송층과 알루미늄(Al) 전극사이에 넣어 양공이 효과적으로 주입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기존 양자점 발광다이오드보다 성능이 월등하게 우수한 세계 최고 성능의 삼원색 양자점 발광다이오드를 개발했다. 기존 소자의 최고 기록을 3배 이상 뛰어넘는 발광효율(적색 : 7.3%, 녹색 : 5.8%, 청색 : 1.7%)과 100배 이상 높은 수명을 달성했다.
이 연구 성과는 양자점 발광다이오드의 큰 문제점을 해결한 것으로 학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산업·기술적 중요성도 인정받고 있다. 본 업적에서 개발된 양자점 발광다이오드의 효율과 휘도는 현재 상용화된 유기형광물질에 기반한 OLED에 근접한 수준으로, 양자점 발광다이오드의 실용화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인문학적 신조를 바탕으로 과학도의 길을 걷다.
이창희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실험실만 떠나면 영락없이 공자와 맹자에 심취한 인문학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과학자다. 그의 인생관과 철학도 바로 공맹(孔孟)사상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의미의 ‘무자기(無自欺)’라는 문구를 항상 생각합니다. 옛 선비들이 세상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고 자신에게 정직하는 게 가장 어렵다는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여러 선택을 놓고 갈등이 생기거나 어려운 것을 회피하고 싶고 잘못한 것을 숨기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이 문구를 생각하며 정직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와 더불어 대학(大學)에 나오는 ‘내 마음 속에 성심을 다하면 밖으로 드러나므로 군자는 항상 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가야 한다(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는 말도 좋아하며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다소 인문학적 소양이 강한 것으로 보이는 이창희 교수가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어릴 적 스승의 가르침과 더불어 감명을 준 한권의 책이었다.
저는 스승 복 하나는 타고난 것 같아요
“저는 스승 복(福)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인생에 큰 감흥을 준 3명의 스승이 있습니다. 우선 저에게 과학의 길을 안내한 분은 고등학교 재학 당시 생물 선생님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달팽이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분으로 <꿈꾸는 달팽이>라는 저서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 노벨 생물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이 쓴 <이중 나선>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여름방학 숙제를 주셨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과학연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알게 됐고 과학자로 살아가는 것이 대단히 보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모 출판사에서 나오는 과학 시리즈 문고가운데 물리와 수학분야를 많이 읽었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최신 기술을 접하게 된 건 두 번째 스승 덕분
“두 번째 스승은 물리학과 석사과정 시절 지도교수였던 박영우 교수님 입니다. 박영우 교수님은 1979년 펜실베이니아대학 물리학과에서 훗날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앨런 히거(Alan Heeger) 교수님 지도하에 전도성 고분자 발견에 기여한 분입니다. 그 후 서울대 물리학과에 부임해 최신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전도성 고분자분야 연구를 국내에 소개하고 탄소기반 소재의 물리 연구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석사과정에 입학하던 1987년에 그 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온초전도체가 가장 각광을 받은 분야였습니다. 전도성고분자는 물리학 분야에서는 아주 생소한 새로운 분야였지만 박교수님 덕분에 이 분야를 연구하게 된 것이죠. 재수가 좋았다고 할까요?”
박영우 교수와의 인연은 세 번째 스승인 앨런 히거 교수와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이 교수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 바바라 캠퍼스로 옮긴 히거 교수가 박사과정을 지도해 주는 영광을 얻게 된다.
“따지자면 박 교수님이 스승이니 저는 히거 교수님의 손자에 해당되는 셈이죠. 히거 교수님은 유기반도체 물리 등 학문적인 것 뿐만 아니라 과학자로서 연구하는 자세, 그리고 연구에 대한 열정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실험기구를 깨트려 낭패에 빠지기도
이 교수에게는 괴로웠던 실수 안에서‘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을 실감했던 경험이 있다.
“서울대 석사과정 때였습니다. 밤늦게 실험하다가 실수로 실험기구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까지 완성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실험이어서 수리하러 청계천에 갔는데 상점들이 다 문을 닫아 고칠 수 없어서 큰 낭패감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제 실수 때문에 중요한 일정을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한 죄스러움에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도교수님께 크게 혼날 것으로 생각돼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서 늦은 밤 교수님 댁에 전화를 걸어서 말씀 드렸더니 괜찮다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신 것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이후에 저는 실험실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에 어떤 큰 실수를 하더라도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경험했고, 학생들에게도 종종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기 분야에만 갇히지 말라, 그리고 항상 자신을 가져라.
이 교수는 모름지기 앞서 가는 과학자가 되려면 자기 전공에만 갇혀있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논문이나 뉴스 등을 볼 것을 권합니다. 자기 분야에만 매몰됐을 때 몰랐던 것이나 어려운 것이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알려진 것일 수도 있고 자기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히거 교수님은 저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와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발표할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고 늘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사실 저도 이 부분이 부족한 편인데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연구는 대부분의 연구자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과감한 용기를 갖고 발표하고 꾸준히 연구를 계속해 해당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례들이 과학사에 아주 많이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와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정민근)은 상온에서 세계 최고 효율을 갖는 삼원색(적색․녹색․청색) 양자점 발광다이오드를 개발한 서울대학교 이창희 교수를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7월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은 과학기술 마인드 확산과 과학기술자의 사기 진작을 위해 1997년부터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씩 선정해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과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연구 결과가 권위 있는 학술지인 나노레터스에 게재돼 120회 이상 인용됐고 이창희 교수는 국제디스플레이학회의 특별 공로상(2014)을 수상해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최근에 연구 성과를 활용해 세계 최초로 고효율 백색 양자점 발광 다이오드와 순수 자외선을 방출하는 양자점 발광다이오드를 개발했다.
이창희 교수는 “공동연구를 수행한 차국헌 교수, 이성훈 교수께 감사드리며 연구실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며, “앞으로도 양자점 및 유기반도체 기반의 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태양전지의 성능을 월등히 높일 수 있는 연구를 통해 학문 및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