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Information Technology, 이하 IT)의 발달로 보안 관련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우리가 각종 IT 기술이 적용되는 기기를 사용할 때 “보안은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간다. 그러나 이 믿음을 흔들기라도 하듯 ‘개인 정보 보안’과 ‘국가 안보’의 가치가 충돌했다.
미국 법원이 현지시각으로 2월 16일 이날 총기 테러로 14명을 살해한 무슬림 부부의 아이폰을 미국 연방수사국(이하 FBI)이 열어볼 수 있도록 테러범의 ‘아이폰5C’를 조사할 수 있는 ‘뒷문(Back Door, 이하 백도어)’을 FBI에 만들어서 제공하라고 애플에 명령했기 때문이다.
애플 팀쿡(Tim Cook) CEO는 이를 바로 거부했으며, 24일 ABC방송에서 백도어 개발로 많은 사람의 사생활 침해와 전체주의 정부나 해커가 악용할 열쇠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25일(현지 시각) 애플의 변호인단은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연방지방법원에 FBI의 수사에 협조 명령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신청서를 제출했다.
27일 자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등의 IT 업계도 애플의 입장을 지지했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 CEO는 애플이 잠금 해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고 표현했고, 구글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CEO는 이러한 행위를 두고 “골치 아픈 전례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 1위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의 얀 쿰(Jan Koum) CEO는 고객 자료를 보호하기 위한 애플의 결정을 존중했으며, MS 브래드 스미스 최고법무책임자는 애플을 돕기 위한 법률 의견서를 법원에 낼 계획이다.
그러나 잇따른 테러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미국 시민의 반응은 좀 달랐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미국 성인남녀 1천2명을 대상으로 한 아이폰 잠금 논란에 관한 여론 조사 결과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을 애플이 풀어줘야 한다”가 51%, “풀어주면 안 된다”가 38%로 나와 국가 안보를 지지하는 편에 손을 들었다.
26일 <한겨레신문>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이것은 과거 버전인 파루크의 아이폰이 아니라 최근 새로운 암호화 기술을 적용한 신형 아이폰들의 잠금 해제를 노리고 있다는 것으로, 신형 아이폰에 장착된 칩들은 국가안보국이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칩은 이스라엘 쪽에서 설계됐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에 의하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투고한 칼럼에서 미국 국방선진연구 프로젝트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DARPA)의 선임과학자 에이치 티 고런슨은 “파루크의 아이폰 내용을 연방수사국은 이미 파악했지만, 이것을 핑계로 애플에 백도어 개설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공포의 미래소설 (출처=두산백과)’로 묘사되는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1984년>에서 언급된 ‘빅브라더(Big Brother)’가 떠오른다. <1984년>은 최근 야당이 테러 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진행하면서 국회에서 낭독해 더욱 화제가 됐다.
빅브라더는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독재자 빅브라더를 따서 만든 용어로, 현재 긍정적 의미로는 선의의 목적으로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를 뜻하며, 부정적 의미로는 정보 독점을 통해 권력자들이 행하는 사회 통제 수단을 말한다. (출처=시사경제용어사전)
“보안이냐 감시이냐, 혹은 개인 정보의 보안이냐, 국가의 안보이냐” 등의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진정한 보안의 의미’와 ‘인격 존중, 정직’ 등의 기본적인 가치가 내포돼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스튜어트 맥밀란(Stuart McMillen)이 조지 오웰의 <1984년>과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개념을 비교하면서 1995년 5월에 그린 만화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의 내용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기자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안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IT 기술의 발달이 사람의 손에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웰은 책을 금지당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 금지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정보를 차단당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줘, 소극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우리에게 진실이 전달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진실이 쓸데없는 정보의 바다에 수장될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우리가 폐쇄적인 문화를 가질 것이라 두려워했으나, 헉슬리는 우리가 쓸데없는 것에 연연하는 문화를 갖는 것을 두려워했다.
헉슬리가 <다시 찾아가 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Revisited)>에서 언급했듯이, 독재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자들과 합리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흥미를 잃고 정신이 흩어지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1984년>에서 사람들은 고통으로 조정 당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람들은 쾌락으로 조종당한다.
한 마디로,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하게 할 것을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우리를 몰락하게 할 것을 두려워했다.”
- 스튜어트 맥밀런의 만화 <죽도록 즐기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