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3차원 물질에서 표면 원자 한 겹을 떼어낸 형태로 가장 얇은 두께의 물질인 2차원 물질은 지난 10년간 응집물질물리학 및 재료과학 분야의 폭넓은 관심을 받아 왔다. 그 가운데 인(P) 원자로 된 흑린(black phosphorus)이란 물질의 표면 몇 개 층을 떼어낸 2차원 평면구조의 나노 물질인 포스포린은 육각벌집 모양으로 탄소(C)로 이뤄진 그래핀과 원자 배열이 유사하나 규칙적으로 주름진 독특한 구조를 갖기 때문에 물성 조작에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주목 받았다.
국내 연구진이 꿈의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그래핀의 최대 단점인 전류흐름 통제 어려움을 해결했다. 향후 초박막 반도체 신소재의 상용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포항공과대학교 김근수 교수는 포스포린의 전자물성 제어기술 개발을 통해 초소형, 고성능 반도체 신소재 개발의 발판을 마련한 데 이어 새로운 양자 상태를 최초 발견함으로써 다양한 후속 연구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래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신소재 관련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게 평가, '3월 과학기술자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젊은 교수, 작지만 강한 연구 꿈꾸다
‘집중력의 인내심’과 꾸준히 자기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반성적 사고’, 그리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연구자의 덕목으로 꼽는 김근수 교수, 그는 2014년 11월 포스텍 교수로 부임한 이래 자신의 연구철학을 담은 작지만 강한 연구 그룹을 키우고 있는 젊은 과학자다.
2차원 물질 흑린의 밴드갭을 제어하고 비등방적 디락상태를 최초로 발견한 그의 연구 성과는 2차원 물질에 기반한 초소형, 고성능 전자소자 및 광전소자 상용화를 위한 ‘전자물성 제어기술’의 진일보로 평가받고 있다.
김 교수가 대학원에 진학하던 2005년만 해도 2차원 물질은 실용화와는 거리가 먼 꿈의 물질이었다. 불과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 각국이 2차원 물질의 상용화를 위한 난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진행할 정도로 관련 분야의 발전 속도는 빠르고 경쟁은 치열하다.
그의 바람처럼 거시적인 밑그림과 세밀한 디테일의 균형을 갖춘 연구를 통해 세계적인 2차원 물질의 물성 연구그룹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2차원 물질의 물성을 탐색하고 제어해 응용성 높이고파”
다음은 김근수 교수와의 일문일답 내용.
- 수상 소감 한마디.
▲ “미국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 저의 연구그룹을 만들고 연구책임자로서 처음 내놓은 성과인데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게 돼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연구실 구성원들이 잘 따라와 주었고, 또 많은 분들께서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좋게 평가해주신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2차원 물질의 물성 제어 및 상용화를 위한 난제 해결에 매진해 왔는데 관련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
▲ “박사학위 기간에 주로 반도체 표면에 형성된 원자 한두 층 수준의 두께를 갖는 2차원 물질을 연구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2차원 물질은 실용화와는 거리가 먼 꿈의 물질이었고 저 스스로도 실용화를 깊게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2005년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Geim과 Novosev가 그래핀을 떼어내는 획기적인 방법을 발견한 이래로 지난 10년간 2차원 물질은 연구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당시 꿈만 같던 얘기가 불쑥 현실로 다가와 이제는 상용화를 위한 난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에 이른 것이죠.”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시절부터 2차원 물질의 상용화 난제 해결을 연구 목표로 했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포스텍 물리학과에 연구그룹을 만들어 2차원 물질의 물성 제어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됐습니다.”
- 반도체를 비롯해 전자소자의 소형화, 고성능화를 위해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이 분야 동향은 어떤가.
▲ “2차원 물질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얇은 형태의 물질로 그 두께가 불과 원자 한두 층에 이르면 통상적인 3차원 물질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물성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한 독특한 물성을 활용해 전자 소자의 소형화, 고성능화를 실현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2차원 물질인 그래핀은 우수한 전기전도성을 가져 소자 활용에 매력적인 물질이지만 준금속성을 띠어 전기전도를 제어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계점을 갖습니다. 쉽게 말해 전기가 잘 흐르나 그 흐름을 차단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전기전도성 제어가 비교적 용이한 이황화몰리브데늄 혹은 포스포린 등과 같은 2차원 반도체 물질이 그래핀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2차원 반도체 물질들도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기 때문에 결국 2차원 물질 상용화를 위해서는 앞으로 고유 물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 연구 중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 “연구 활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예술 활동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에도 일종의 ‘창작의 고통’ 같은 게 있죠. 고민하던 문제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힘들고 괴로워서 때론 그만 멈추고 싶단 생각이 들곤 해요. 하지만 그 과정을 잘 참고 넘어가면 열매는 아주 달콤하고, 큰 보람을 느낀 경험도 있기에 그로부터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 연구자로서 귀감으로 삼는 인물이나 스승이 있나.
▲ “정말 감사하게도 연구자로서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당시)연세대 물리학과 염한웅 교수님으로부터 연구를 행하고 연구실을 운영하는 모든 기초를 잘 다질 수 있었습니다.”
“박사후연구원 과정의 멘토였던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Eli Rotenberg 박사와 일하며 꿈과 같은 황당하지만 중요한 아이디어에 도전하고 조금씩 실천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연구에 진지하게 임하는 국내외 많은 선배, 동료 연구자들로부터 배우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인물뿐만 아니라 논문도 있습니다. 논문을 읽으면서 거기에 묻어나는 연구자들의 깊은 고민의 흔적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 ‘걸작’ 논문을 보면 그 연구자의 얼굴을 모르더라도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듭니다.”
- 과학기술인으로 살아오며 기뻤던 일, 기억에 남은 일은?
▲ “예전에 스스로에게 던져 본 질문이에요. 처음에는 중요한 연구 논문의 게재가 확정되던 날, 최종적으로 임용이 확정됐던 날 등이 떠올랐었는데, 좀 더 숙고해 보니 그 보다 더 기뻤던 순간은 천신만고 끝에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를 풀어냈던 순간 혹은 다른 사람들이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어렵게 떠올리던 순간에 정말 기뻤던 것 같네요. 연구자로서 가장 높은 수준의 쾌감을 느꼈던 것 같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가 됐죠.”
- 인생의 좌우명 내지 연구에 임하는 철학이 있다면?
▲ “저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지 못해서인지 연구를 즐기면서 하기보다는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집중력의 인내심’과 꾸준히 자기 발전을 가능케 하는 ‘반성적 사고’, 그리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향후 연구계획을 말해달라.
▲ “단기적인 목표는 개인적인 연구 철학이 깃든 작고 강한 연구 그룹을 키우는 것입니다. 외국의 선도 그룹과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수준 높은 연구 성과를 꾸준히 생산하는 그룹을 만들고 싶습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2차원 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탐색하고 제어해 그 응용성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응용성을 바탕에 둔 기초 연구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후학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조언 부탁한다.
▲ “재미있는 문제보단 중요한 문제에 도전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주어진 일에 몰두하길 당부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일고에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과정 끝에 주어지는 열매와 같고, 연구와 논문을 일종의 작품에 비유하자면 걸작은 거시적인 밑그림과 세밀한 디테일의 균형에서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자세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