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국내 산업계에 병목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고 꽉 막힌 형국이다. 새로운 기업의 진입과 기존 기업의 퇴출의 합인 기업 교체율이 활발할수록 합리적인 자원재분배와 산업의 역동성이 살아나는데, 국내의 경우 기업 교체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준비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기업교체율은 2002년과 2011년을 비교했을 때, 각각 30%에서 19%, 35%에서 24%로 감소했다.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와 없어지는 일자리의 합계를 의미하는 일자리 재배치율도 같은 기간, 제조업이 49%에서 31%, 서비스업이 62%에서 36%로 떨어졌다. 이는 산업전체의 혁신과 변화의 역량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전체 창업기업의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도∙소매업, 숙박업, 부동산업 등 생계형 창업이 64%에 이르고 과학기술 분야의 창업은 2.7%에 불과해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혁신지수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장의 경직화는 날이 갈수록 혁신능력이 중요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미래준비위원회의 박상일 위원은 “제조업 육성에 치우쳐 금융, 유통 등 내수산업에 소홀히 해왔던 점, 선진국 대비 벤처‧창업이 저조한 점, 규모의 편견, 대기업 중심의 산업생태계 등이 국내 산업계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의 산업정책은 제조업의 수출에 맞춰져 있었지만, 내수산업이라고 여겨졌던 금융, 유통, 서비스업 등이 세계화 추세에 따라 급작스럽게 글로벌 경쟁에 내몰리게 되면서 추풍낙엽처럼 힘을 잃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획기적인 기술혁신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비롯됐고, OECD 국가의 과거 20년 간 기술혁신을 선도한 기업의 50%도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은 규모의 편견에 함몰돼 작다는 이유만으로 기술혁신 성과 역시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회적인 뿌리 깊은 편견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중소기업이 활개 치는데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역시 핵심 문제 중 하나다. 인력, 정보, 기술, 자금 등이 기술혁신기업에 불리하게 배분돼 있고, 대‧중소기업 관계도 수직적, 폐쇄적이며 불공정 거래의 관행이 남아있다. 이는 중소기업이 정부와 대기업의 행태에 대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함으로써 도전과 혁신을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박 위원은 “현재 한국경제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수출, 매출 등 외형적 숫자도 꺾이고 있지만 외형적 모습보다도 내적 모순이 더욱 크다”라며 “기술혁신기업이 생애주기를 따라 마음껏 뛸 수 있는 산업생태계 형성이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를 위해서 정부는 기술혁신기업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정한 심판, 초기단계 투자유인 등을 실시해야 한다.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심화될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기술혁신기업이 많이 창출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