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입자실험 연구에 필요한 가속기와 대형검출기 시설이 전무해 이전에는 해외 시설을 사용하는 국제공동연구를 주로 수행했다. 중성미자의 변환이 1998년 발견된 후 가장 약한 변환확률만이 측정되지 않고 있었는데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를 이용하면 이것의 측정이 가능하다는 학계의 의견이 모였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 시설이 우수하고 지하 검출시설 구축이 용이한 주변에 산도 있어 비교적 작은 비용으로도 한국에서 최초의 중성미자검출기를 구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행히도 영광의 한빛원자력발전소 부근에 지하검출시설 구축이 용이하도록 산이 있어 입지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는 국내 대학 공동연구진이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파동주기를 관측해 중성미자 중 가장 가벼운 것과 가장 무거운 것의 질량 차이가 전자 질량의 약 10억분의 1 정도로 매우 적다는 것을 측정했다고 밝혔다.
김수봉 교수(서울대)가 책임자인 공동연구팀은 미래창조과학부 기초연구사업(집단연구)을 통해 수행했으며, 연구결과는 물리학분야의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피지컬리뷰레터(Physical Review Letters) 5월 24일자에 게재됐다.
1998년 일본 수퍼카미오칸데 실험에서 세 종류의 중성미자들 사이에 서로 변환이 일어남을 발견해 중성미자 질량 존재를 입증했고 (중성미자 변환은 질량의 존재를 의미함),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을 뒤흔들어 물리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이 변환의 발견과 중성미자 질량 존재를 밝힘으로써 2015년 카지타 교수와 맥도날드 교수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한 종류의 중성미자가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를 ‘변환확률’이라고 한다. 중성미자의 종류가 셋이므로 세 변환확률이 존재하는데 두 변환확률(~100%, ~80%)은 측정이 됐으나 나머지 하나는 유독 작아 오랫동안 측정되지 않은 상태로 입자물리학의 최대 골칫거리 중의 하나였으나, 2012년 한국의 리노 실험과 중국의 다야베이 실험이 발견했다.
국내 리노 연구진은 2011년 8월부터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를 두 대의 지하 검출장비로 매일 24시간 쉼 없이 지속적으로 관측해 왔다. RENO(리노) 연구진은 2012년 4월, 세 종류의 변환확률 중 유일하게 측정되지 않았던 가장 약한 변환확률을 측정한 바 있다. 이 결과의 논문은 1300여회 인용될 정도로 이 분야의 지평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결과는 2013년 1월까지 약 500일간의 데이터를 분석해 원자로에서 발생된 중성미자가 검출장비까지 약 1.4km를 날아오는 도중에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바뀐 확률을 2012년 처음 측정한 결과보다 오차를 무려 2배 이상 줄였다.
오차를 현저히 줄여 측정한 중성미자의 변환확률이 에너지와 원자로에서 검출장비까지 날아간 거리에 따라 파동처럼 달라지는 것을 관측했다. 이것으로부터 중성미자의 가장 가벼운 질량과 가장 무거운 질량의 차이가 전자 질량의 약 10억분의 1 정도로 매우 적음을 측정했다. 중성미자가 에너지와 거리에 따라 사라졌다 다시 생성되는 파동적 주기를 알아내어 매우 작은 질량의 차이를 측정한 것이다.
또한 정밀 측정을 통해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에너지 스펙트럼이 놀랍게도 그 동안 학계에서 통용되던 것과는 다르게 특정 에너지 영역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중성미자의 질량은 너무 작아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 연구 결과로 중성미자의 가장 가벼운 것과 가장 무거운 것의 질량 차이를 측정함으로써 이 입자의 절대 질량을 알아내는데 토대를 마련했다. 중성미자의 변환확률을 2012년 처음 측정한 결과보다 오차를 무려 2배 이상 줄였다. 이 덕분에 물리학의 난제로 남아 있는 우주의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을 알아낼 수 있는 가능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셈이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에너지 스펙트럼을 정밀 측정했는데 놀랍게도 특정 에너지 영역에서 예상한 것과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원자로 중성미자를 측정한 양이 예상한 것보다 작아 소위 ‘원자로 중성미자 퍼즐’로 알려져 있던 문제의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성미자 학계는 이 원인을 밝히고자 여러 실험을 계획하고 있고 이론적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이는 현재 수집한 약 1500일의 데이터 중의 1/3 정도만을 분석한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의 수집과 더 개선된 분석을 통해 실험 오차를 더욱 줄여 중성미자의 변환확률과 질량 차이를 최종 목표인 5%의 오차를 가진 정밀 측정 결과를 얻어낼 경우 물리학의 난제로 남아 있는 우주의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과 ‘중성미자 질량 순서’를 알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리노 실험의 2012년 가장 약한 변환확률의 발견과 이번 연구 결과인 이 변환확률의 정밀 측정과 중성미자 질량 차이의 측정으로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 그룹으로 도약했다. 연구진은 현재 진행 중인 실험을 5년 정도 더 수행할 예정이고 그 이후의 중성미자 연구를 위한 지하실험 시설을 나주 금성산에 구축하고자 노력 중에 있다. 약 2만톤의 섬광액체와 약 1만개의 대형 광센서를 이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형 우주 중성미자망원경을 만들고자 한다. 초신성 폭발시 10초간의 짧은 순간에 약 6천개의 중성미자를 관측해 중심에서 중성자별이 탄생하고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관측하려고 한다. 이 검출시설은 또한 지구의 열 방출 원리를 중성미자로 관측해 알아내고자 하며,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로 중성미자의 질량 순서를 결정하고 변환확률과 질량차이를 아주 정밀하게 측정할 예정이다.
김수봉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로 물리학의 난제로 남아 있는 ‘중성미자 질량 순서’와 우주의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을 알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은 셈”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