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합병 의사 이후 중국과 일본 조선업계는 곧바로 매우 불편한 시각을 언론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일본, 중국, 유럽은 한국 조선산업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WTO 제소를 적극 활용해왔다. 지난해 가을 한국 정부의 조선업 활력 대책 발표 직후 일본 조선업계가 WTO제소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의 한국 조선업에 대한 WTO제소는 보조금 및 정부지원이 주된 이유였다. 이는 충분히 대응해 갈 여지가 있는 다소 추상적인 주제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합병은 한국의 주력선박인 LNG선과 VL탱커 그리고 초대형 컨테이너선 분야에서 합계 점유율이 50%를 상회하는 수치로 드러나는 것이어서 경쟁국가들과 분쟁을 피해갈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합병을 위해 수주점유율을 일부러 낮추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일본과 중국 조선업계는 독과점을 이유로 한국 조선업에 대한 WTO 제소 공세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 핀칸티에리-STX프랑스 합병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합병 이후에도 독과점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한국 조선업의 수주 능력을 더욱 낮추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조선업 역시 CSSC와 CSIC의 합병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는 한국과 사정이 다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은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경쟁을 저해하는 분명한 이유가 되지만 중국 조선소들간의 합병은 세계 조선시황과 한국의 경쟁력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알스톰의 TGV, 지멘스의 ICE에 이어 세계 3대 고속철도로 평가 받는 신칸센의 히타치 역시 이런 이유로 세계 1위 철도기업 중국 CRRC의 세계철도시장 영향력을 낮게 평가하고 지멘스-알스톰 합병의 부당함을 지적한 바 있다.
히타치 CEO는 최근 언론을 통해 중국 철도기업 CRRC의 매출은 모두 중국 내수에 집중되어 있으며 CRRC가 유럽 철도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을 하게 되면 VL탱커와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VLGC 그리고 드릴쉽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 조선해운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를 일본과 중국 조선업계에서 가볍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주경쟁 완화’와 ‘선가회복 노력’은 WTO가 제시하고 있는 강력한 담합 조항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인 것으로 우려된다.
전세계 조선업 공급과잉의 책임과 이유는 중국 조선업계에 있다. 한국 조선업이 스스로 규모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진행할수록 중국 조선업과 일본 조선업의 반사이익이 커진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일본 조선업은 1980년대 초 석유시장 공급과잉의 결과로 유가가 급락하자 도크의 절반을 줄이고 핵심 설계인력들을 내보내는 조선합리화정책을 단행했다. 그 결과 일본 조선업은 스스로 경쟁력을 잃었다. 일본은 두 번의 오일쇼크를 경험하면서 선박 설계인력을 대대적으로 감축하고 표준선형을 개발하면서 더 이상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부족한 설계인력의 한계를 느낀 일본 조선업계는 이제서야 인력을 한데 모으기 위한 조선소간 통합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소를 합친다 해서 부족한 설계인력이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정리된 수 많은 설계기술인력들은 바다 건너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면서 현대중공업은 창립 이후 10년만인 1983년 세계 선박수주점유율 10.6%를 달성하며 세계 1위 조선소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 한국 조선업은 조선 3사 경쟁체재를 유지하면서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온 반면 일본은 기술인력 구조조정과 설비 감축 이후 2등 조선소로 전락하게 됐다.
이러한 일본의 조선업 실패 사례를 고려하면 한국 조선업이 스스로 설비를 줄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