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새로 출범하면서 미·중갈등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반도체·배터리 등 네 가지 대외 첨단 수출품목에 대해 특별 조사를 하기로 결정해 한국 산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전망이 나왔다.
산업연구원이 25일 발표한 ‘바이든 반도체 공급망 조사 행정명령의 함의와 한국의 대응방안’에 따르면,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행정명령 14017호’에 서명하면서, 현재 중국에 과도하게 쏠린 반도체 수출과 한중 간 복잡하게 얽혀있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구조로 미국의 제재 범위에 따라 우리 산업 생태계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 행정명령 14017호는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바이오의약품 등 네 개 품목에 대해 100일간 공급망 조사를 지시하는 대통령령이다.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 있어 적성국과 불안정 국가로부터의 위협과 동맹·파트너 국가의 정책 동향·수급 현황 등을 파악하고, 향후 국제협력방안을 모색을 꾀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최근 빚어진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미국 내에서 심각한 생산 차질을 겪고 있는 자동차, 전자 업종 등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대한 미국의 우려라는 것이 산업연구원 측의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의 첨단 기술제품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990년대 20%대에서 2008년 10%대로 추락했다. 고위기술군 제조업의 무역수지는 2001년 적자 전환 이래 2003년 20조원 수준에서 2010년에 약 100조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반면, 중국은 2001년 흑자 전환 이후 2008년까지 10배(180조원) 이상 상승했다.
산업연구원은 중국·홍콩 등의 수출 비중이 60%대를 웃돌고 있는 우리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해 향후 미국의 중국 압박과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시도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대만)의 독주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걸어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와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해석되기 때문에 우리 메모리 분야에 큰 피해를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미국이 7나노미터(nm) 이하 제조 공정 역량이 열세인 상황에서 대체 공급원 확보를 위해 일본 업체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산업연구원은 주장했다. 최근 일본 르네사스(Renesas, 일본 정부 주도 NEC·히타치·미쓰비시 전기 등이 공동출자한 반도체 기업)가 미국 IDT(Integrated Device Technology)와 영국 다이얼로그(Dialog Semiconductor) 반도체 등을 인수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이번 행정명령은 중국 견제와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 기반 강화가 주된 목적”이라며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우리 반도체 산업도 100일 동안 미국의 제재 범위와 강도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